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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誹謗)과 무례(無禮) -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

by 우둥불 2021. 5. 13.

비방(誹謗)은 사전적인 의미로 '남을 헐뜯기 위하여 나쁘게 하는 말'로 정의되는 매우 부정적인 언어입니다.  다시 표현하면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자신과 뜻을 같이하지 않을 때 상대방을 헐뜯고 비방하는 경우와 그리고 자신의 이익에 배치(排置)되는 경쟁자를 중상모략하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남을 비방하는 경우는 대다수가 화(禍)를 부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특히 비방을 당하는 사람이 크게 피해를 보게 되므로 따라서 비방은 사회의 불신을 초래하고, 인간의 심성을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특히 요즘같이 정보통신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온라인 상의 비대면으로 많은 소통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 나르거나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비방성 댓글(악플)로 인하여 불특정 다수는 물론 소수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방이 난무하는 것은 예(禮)를 모르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의 근본정신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데 있는 것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은 절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1575년(선조 8년)에 조선의 정치상황은 '동서의 당론(黨論)'으로 인하여 정치적인 혼란을 초래하는 중대한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동인과 서인은 서로 상대를 소인배라 지칭하며 격렬하게 상대에 대한 비방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때 이이는 당시의 상황을 중재하기 위하여 '양시쌍비론(兩是雙非論)'으로 양측을 설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동인의 주장에 옳고 그름이 있고, 서인의 주장에도 옳고 그름이 있으므로 양측의 그른 것은 배제하고 옳은 것을 선택하면 정치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설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동인과 서인들은 서로가 자기편을 들지 않는다고 양측 모두가 이이에게 심한 비방을 하기 시작하여 멈추지 않아 끝내 이이는 모든 공직을 사퇴하고 고향인 해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며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이때 이이는 비방에 대한 글을 "격몽요결(擊蒙要訣)"이란 책에 수록하게 되었습니다. 

 

 

격몽요결에 비방에 관한 글 중 제 9장 정인편 일부를 발췌하면

 

 

나를 훼방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내가 정말 훼방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꾸짖어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고, 만일 나의 과실이 적은데 상대방이 과장되게 말했다 하더라도 내게 훼방을 받을 만한 근거가 있었으므로 전날의 잘못을 철저하게 끊어 털끝만큼도 남기지 말아야 하고, 만일 나에게 본래 허물이 없는데 헛된 말을 지어낸 것이라면 그는 망령된 사람일 뿐이니 망령된 사람과 어찌 허실을 따지겠는가.

 

그리고 헛된 비방은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구름이 허공에 떠 있는 것과 같으니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렇게 보면 비방이 생겼을 때 내게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허물을 짓지 않도록 더욱 힘쓸 것이니 나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만일 그런 비방을 듣고 시끄럽게 자신을 변명하여 자기의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려고만 한다면 그 허물은 더욱 깊어지고 비방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비방을 그치게 하는 방법을 물으니 문중자(文中子)가 대답하기를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 제일이다.' 하므로 그 사람이 다시 한마디를 청하니 '변명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이 말은 배우는 자의 법이 될 만하다. 

 

 

물론 수양을 통해 남에게 비방의 빌미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비방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 앞에 언급한 대로 예의 근본정신에 따라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할 때에 비방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16세기의 전통사회 기준을 현재 무한경쟁의 시대인 21세기 사람들에게 무조건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의 비방을 분노하여 거칠게 대응하다 낭패를 보는 일이 다반사가 된 현재의 세태를 보면 비방에 대하여 자신을 깊게 뒤돌아 보는 계기로 삼으며 여유롭게 대처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과적으로 옳고 그름은 언젠가 가려지게 마련이고, 또 비방을 일삼는 사람은 그만한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