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증도가(證道加)35 獅子吼無畏說 百獸聞之皆腦裂 사자후무외설 백수문지개뇌열 獅子吼無畏說 百獸聞之皆腦裂 사자후무외설 백수문지개뇌열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뭇 짐승들이 들으면 모두 뇌가 찢어짐이여 사자는 모든 짐승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세기 때문에 또한 가장 마음의 평화가 큰 짐승이 된다. 이것은 가장 힘이 센 자만이 두려움이 없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우리 모두는 사자같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다시 말하면 해탈자는 천지(天地)간의 중생에 대한 두려움이 일체 없다는 의미로 이것은 곧 두려움을 가질 까닭이 근본적으로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선지식은 흔히 사자에 비유되곤 하는데, 이들은 왜 두려움이 없을까? 그것은 죽음을 정복하고 영원불변한 본체를 얻었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따라서 몸에 대한 집착이 완전히 소멸되었으니 병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업장 .. 2021. 5. 25. 非但我今獨達了 河沙諸佛體皆同 비단아금독달료 하사제불체개동 非但我今獨達了 河沙諸佛體皆同 비단아금독달료 하사제불체개동 나만 이제 혼자 통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 본체는 같도다. 나만 혼자 깨달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며, 깨달은 모든 이는 부처님 본체와 같고 나아가 일체부처님 역시 모두 일미(一味)로 본체가 같다. 그런데 현상계가 일심(一心)인 평등(平等)을 감춘 채 주로 차별상(差別相)이 드러나 욕심으로 분별하여 평등을 잊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들과 조사(祖師 ; 종파를 세운사람)는 물론 깨달은 祖師들까지 차별하여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불이(不二)의 종취로 더욱 들어오지 못한다. 진정한 해탈 조사라 한다면 일체가 똑같은 분들이고 도가 높고 낮음의 차이가 없다. 만약 높고 낮음이 있다면 변하므로 무상(無常)하여 아직 도(道)에 들어간.. 2021. 4. 30. 宗亦通設亦通 定慧圓明不滯空 종역통설역통 정혜원명불체공 宗亦通設亦通 定慧圓明不滯空 종역통설역통 정혜원명불체공 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함이여 선정과 지혜가 원만하게 밝아 공에 체류하지 않는도다. 종취(宗趣 ; 스스로 깨달은 궁극적인 진리)가 통한다는 것은 자성(自性)을 보고 구경각(究竟覺 ; 수행을 하여 얻는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여 중도를 증득한 것이다. 법을 깨우쳐서 대지혜광명을 밝혀 윤회를 벗어나 해탈열반한 것으로 업식(業識)덩어리인 자기의 무명(無明)까지 격파하여 드디어 대우주의 신령세계와 통하여 온전히 하나가 된 것이다. 여기서 종취가 체(體)라면 설법은 용(用)이 된다. 그리고 이 둘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을 근본으로 하나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설법도 자연스럽고 종취에 어긋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설법은 이러한 종취로부터 자연스럽.. 2021. 3. 29. 不因訕謗起怨親 何表無生慈忍力 불인산방기원친 하표무생자인력 비방따라 원망과 친한 마음 일어나지 않으면 하필 남이 없는 자비인욕의 힘 나타내 무엇할건가 스스로 자신에게 평생 무엇을 주고 살아왔는가? 자신에게 큰 지혜를 주었는가? 큰 복을 주고 있는가? 큰 힘을 주고 있는가? 한평생 부족함 없이 편하게 사는 것은 자기 자신과 더불어 누리는 것일 뿐, 실제는 자기 자신에게 주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삶이다. 그저 자신이 갖고 나온 곳간을 비우는 것이니 이는 곧 복진타락(福盡墮落)이 되는 것뿐이다. 따라서 고통 없이 살아왔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준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결국은 삶이 허무하고 우울해지는 것이다. 원망과 친한 마음은 모두가 망심(妄心)으로 그러한 망심의 유혹과 채찍을 견디게 하는 고행인욕(苦行忍慾)은 자신에게 참음(忍)을 주는 것인데, 여기서 작은 .. 2021. 3. 12. 我聞恰似飮甘露 銷融頓入不思議 아문흡사음감로 소융돈입부사의 내 듣기엔 마치 감로수를 마심과 같아서 녹아서 단박에 부사의해탈경계에 들어가도다. 남의 비방과 비난 그리고 칭찬 등의 인연과 압력은 마치 감로수를 마시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이는 독약(俗;속)과 감로수(聖;성)의 상대 분별의 경계가 떨어져 나간 상태에 이른 것으로 모든 것이 감로수를 마시는 것과 같아 업장과 번뇌 망상으로 인한 일체의 병인(病因)이 녹아버려 찰나의 해탈에 드는 것이다. 비난을 들으면 속상하고 화가 나지만, 내면 깊이 마음의 움직임이 없이 굳건한 것은 화를 내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런 경우가 커다란 힘을 가진 경우가 되니, 부사의(不思議)해탈경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로수는 쳐다보고만 있으면 안 되고 직접 마셔야 한다. 감로수를 마신다는 것은 부처님.. 2021. 3. 8. 觀惡言是功德 此則成吾善知識 관악언시공덕 차즉성오선지식 觀惡言是功德 此則成吾善知識 관악언시공덕 차즉성오선지식 나쁜 말을 관찰함이 바로 공덕이니 이것이 나에게는 선지식이 됨이라 선(善)만 보고 공부하면 선을 알 수 없고, 악(惡)만 보고 공부하면 악을 알 수 없다. 따라서 선을 알려면 악을 알아야 하고, 악을 알려면 선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양변은 서로가 서로를 품고 의지하면서 한쪽이 커지면 같이 커지면서 나를 중심으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행을 하거나 혹은 삶에 있어서도 선과 악은 같이 공부해야 한다. 나아가서 현상계의 나 자신을 알려고 해도 선과 악은 모두 꿰뚫어야 한다. 그 뿌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큰 지혜를 가지면 선악을 모두 보고 알며, 나아가서 선악분별을 초월한 진여법계로 들어가서 선악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중생구제를 할 수 있.. 2021. 3. 3.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