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이전에는 낭만과 예술의 도시였으나 지금은 죽어버린 도시인 뉴욕에 사는 한 청년의 사랑이야기를 이웃에 이사 온 사람(생물학적 아버지)이 그것을 지켜보면서 소설로 쓰는 영화 속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를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다소 난해하게 여길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그러한 난해한 이야기가 영화적으로는 무리수가 될 수 있지만, 소설로서는 문제가 없는 내용이 될 수 있기에 이야기로서 매끄럽게 풀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영화적인 내용인 것과 동시에 소설적 내용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면 주인공 토마스(Callum Turner역할)는 2명의 여자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하나는 미미(Kiersey Clemons역할)라는 또래의 젊은 여자로서 유색인이고, 또 하나는 조한나(Kate Beckinsale역할)라는 백인입니다.
토마스에게 미미는 사랑한다고 믿고 싶은 여자이며, 그래서 자기의 삶과 연관성을 갖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미미는 토마스에게 뉴욕의 도시 사람들과는 달리 착한 사람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강박관념을 형성시키면서 토마스와의 마음과는 달리 남사친의 관계로서만 유지하려 하면서 토마스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그에 반해서 조한나는 사회경험이 많은 캐리어 우먼으로 노련한 여자로서 토마스에게는 원숙한 여인이지만, 아버지의 숨겨진 여인으로서 절대적인 금기를 상징하는 여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토마스는 미미를 통하여 자신이 무엇인가로 규정되는 것에 대하여 느끼던 답답함에 반작용으로 조한나와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 남자가 그러한 두 여인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욕망을 깨닫는 그러한 이야기를 다루는 소재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두 여인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던 삶에 대하여 깨닫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입니다.
이러한 토마스에게는 두 명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한 명은 자신을 키워준 법적인 아버지인 에단(Pierce Brosnan역할)으로 실리적 인물로 뉴욕 사회에서 성공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아버지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알게 되는 토마스의 생물학적인 아버지로 글을 쓰는 제랄드(Jeff Bridges역할)입니다.
이 두 남자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 소설적인 면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즉, 토마스가 태어나게 된 동기가 된 인물 3명 - 에단(토마스의 법적 아버지), 제랄드(토마스의 생물학적 아버지), 유딧(Cynthia Nixon역할 ; 토마스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도덕에 대한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어릴 적부터 친구로 자란 3명은 결국 그중 에단과 유딧이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을 한 에단이 불임이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결국 3명이 합의 하에 제랄드와 유딧이 어색하게 하룻밤을 보내면서 아들인 토마스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사람이 진짜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3명의 인물에게는 불행한 운명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즉, 사회적인 도덕심과 현실적인 사랑의 갈등 문제에 있어서 30여 년 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힘든 세월을 애써 보내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젊은 토마스에게 제랄드가 처음 만나는 낯선 중년의 남자였지만 토마스 자신도 모르게 끌림을 갖게 되고, 그러한 제랄드에게 미미, 조한나,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에단의 불륜 이야기 등의 모두를 털어놓게 됩니다.
여기서 제랄드가 어떻게 토마스의 아버지나 내연녀 조한나에 대하여 그렇게 전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인지 또한 그러한 제랄드의 목소리가 영화 곳곳에 내레이션으로 들어가는 것인지 그리고 제랄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영화의 후반부에 토마스가 제랄드에게 얘기했던 내용들이 소설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결국은 토마스는 제랄드가 자신의 생물학적인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러한 제랄드에게 토마스가 끌렸던 것 - 즉, 예술에 대한 욕망의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글을 팔아먹는(?) 아버지와 글을 쓰는 아버지 사이에게서 토마스의 마음은 글을 쓰는 아버지에게 마음이 기울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때에 이 영화의 제목이 왜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인 것인가를 알게 만듭니다. 즉, 생물학적인 아버지 제랄드에게는 자신의 일부와도 같은 토마스가 뉴욕에서 살아있는 유일한 청년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토마스 역시 제랄드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알게 됩니다. 이렇듯 토마스와 제랄드는 생물학적인 연계 작용으로서 서로가 상호작용을 통하여 모두가 미래에 대하여 살 의지와 이유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토마스가 태어나게 된 동기가 된 인물 3명도 사회적인 도덕심과 현실적인 사랑문제에 대한 갈등을 현실적인 사랑 방향으로 해결을 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영화는 미숙하고 순수한 주인공 토마스의 사랑으로 단순하고 일률적인 감정의 집약에 지쳐 있었던 현대인들에게 사랑의 근본적인 가치를 일깨워 주고 있다고 보여 주는 영화입니다. 즉,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조명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으로 사랑하는 인물과 평범하게 사랑하는 인물이 영화 내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극단적으로 사랑하는 인물과 비교적 평범하게 사랑하는 인물을 하나로 엮어 주는 매개체인 사랑을 하나의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토마스는 조한나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형태의 사랑을 원했는지를 자각하고, 토마스의 사랑에 대한 미미의 거절은 토마스가 사랑하는 동안에 반드시 행복을 경험하듯이 관계에서 받는 상처 역시도 필연적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토마스라는 인물이 사랑을 통해서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그리고 조한나와 미미와 에단과 그리고 제럴드 역시 사랑에 대한 직접적 혹은 간접적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예찬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바로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알려주는 영화이기에,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감정에 대한 통찰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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