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실학자로서 정약용과 같은 동네에서 2살 터울로 태어난 서유구는 조선과 중국의 식사예법을 " 중국인은 모두 의자에 함께 앉아 식사를 하고, 우리나라 사람은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오로지 한 개의 소반(小盤)을 준다."라고 표현을 하였었습니다.
그 당시에 조선 사람은 이러한 모습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서양인이나 심지어는 중국인에게도 매우 신기한 장면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1861년 3월에 비밀리 조선에 들어와서 천주교를 선교했던 파리 외방전 교회 소속의 리델 신부는 의관을 갖춘 사대부 남성이 사랑방에서 혼자 앉아서 식사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자신이 받았던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그 당시에 서양인들은 혼자서 식사를 하는 것은 매우 좋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 대다수가 사대부 남성의 독상 식사를 목격한 것을 두고 거의 빠짐없이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독상 식사를 당연한 예법이라고 여겼을까요?
그것은 유교식 예법을 기록한 고대 중국의 '예기'와 '주례'에 손님을 대접할 때나 마을에서 남자들이 모여서 술을 마실 때는 주인과 손님에게 독상을 차려내야 된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혼인한 부부에게도 함께 식사를 하지 않고 남편 혼자서 식사를 해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법은 중국에서는 당나라 이후 북방의 여러 유목 민족들의 영향을 받아 점차적으로 독상 식사가 사라지고 두서너 명이 함께 하나의 식탁에서 식사하는 규칙이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조선에서는 성리학자들이 고대 중국의 예법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사대부 남성들은 반드시 소반으로 독상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식사 예법의 따라서 조선 후기에 독상 소반으로 널리 사용된 재질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상판은 은행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가래나무, 배나무 등을 썼고, 다리는 버드나무를 써서 만든 것이 최고급이라 여겨졌다고 합니다.
또한 소반은 생김새에 따라 둥근 소반, 사각 소반, 팔각 소반 등이 있었고, 나주반, 통영반, 해주반 같은 생산지를 기준으로 이름을 분류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둥근 소반은 소반의 다리 모양에 따라 호랑이 다리를 닮았다 하여 호족반(虎足盤)이라 하고, 개의 다리를 닮았다 하여 개다리소반(구족반 ; 狗足盤)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여기에 제대로 격식을 갖춘 소반은 전문 장인이 만들어 값도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격식을 갖춘 소반은 왕실이나 부유한 사대부가에서만 갖추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1끼의 식사로 마련되는 독상에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한번에 차려졌는데,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사랑방이나 대청마루로 옮겨야 하므로 소반에 놓는 그릇은 음식이 바깥으로 흘려지지 않도록 속이 깊은 것이었다 합니다. 특히 사기나 놋으로 만든 밥그릇과 국대접은 다른 그릇에 비해 컸고, 반찬은 마른반찬과 진반찬의 두 종류로 구성되었는데 , 마른반찬은 접시에 담아도 문제가 없었지만, 진반찬은 바깥으로 흘릴 염려가 있었기에 대접보다는 입구가 좁고 속이 깊은 '보시기'라는 그릇에 담겼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가정에서 독상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정부까지 나서서 독상 식사를 비판하며 말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 사회가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가운데서 음식점은 물론 가정에서도 여러 명이 함께 식사를 하는 교자상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교자상에는 밥과 국만 빼고 나머지 반찬은 모두 공유하며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사대부의 독상 식사는 성리학의 가부장 제도의 인식이 짙게 드러난 것이므로 오늘 날의 사회나 가정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식사예법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요즘같이 1인 방역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 속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는 이러한 선조들의 식사 예법은 오히려 위생적인 식사 예법으로 여겨지면서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하는 상황을 되새기게 하는 것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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