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但我今獨達了 河沙諸佛體皆同 비단아금독달료 하사제불체개동
나만 이제 혼자 통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 본체는 같도다.
나만 혼자 깨달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며, 깨달은 모든 이는 부처님 본체와 같고 나아가 일체부처님 역시 모두 일미(一味)로 본체가 같다. 그런데 현상계가 일심(一心)인 평등(平等)을 감춘 채 주로 차별상(差別相)이 드러나 욕심으로 분별하여 평등을 잊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들과 조사(祖師 ; 종파를 세운사람)는 물론 깨달은 祖師들까지 차별하여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불이(不二)의 종취로 더욱 들어오지 못한다. 진정한 해탈 조사라 한다면 일체가 똑같은 분들이고 도가 높고 낮음의 차이가 없다. 만약 높고 낮음이 있다면 변하므로 무상(無常)하여 아직 도(道)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道는 평등하므로 道를 증득한 이들 역시 평등할 수밖에 없다. 다만 대도(大道)의 대용(大用)에 따라 종취를 드러내 보이는 언어문자나 방식에 다양한 차별이 있을 뿐이다.
해탈자마다 종취를 드러내는 방편이나 정도에 차이를 두는 것은 그 시절의 인연과 자기의 고유역할, 그리고 본인들의 개성 차이 때문이다. 이들은 법을 제대로 듣고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이 없는 시절에는 그냥 조용히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근기와 선근이 성숙해지고 무르익어 법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시절이 되면 자연히 활동도 많아지고 많은 설법과 방편이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상대에 맞게 자유자재로 응하는 것이니 활동영역이나 방식도 다르게 되는 것이지만 해탈자들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여여(如如)하다. 道의 쓰임은 획일적인 것을 거부하고 완벽한 개성과 자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道가 세상에 풍부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 비로자나불(毘盧蔗那佛)로부터 부여받은 고유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시절인연과 결부되어 움직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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