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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루성은 396년(영락 6년)광개토왕이 정복한 백제 58성 중의 하나로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에 대형(大兄)의 관등을 갖고 있는 수사(守事)라는 지방관이 파견되어 다스린 성으로 나옵니다. 수사라는 지방관은 광개토왕대에 대사자(大使者) 모두루(牟頭婁)가 북부여(北夫餘)에 수사로 파견된 묘지 기록이 있는데, 이를 볼 때 장수왕대에 수사가 파견된 고모루성 역시 그 아래에 하위 단위의 성을 총괄할 수 있는 비교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모루성이 그동안 의문에 쌓여 있었던 것은 그 성이 오직 광개토대왕비와 중원 고구려비에만 보이고 옛 고문헌인 삼국사기, 삼국유사, 신증 동국여지승람등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광개토대왕비에선 이 성에서 다수의 수묘인을 뽑았다는 기사가 있어 이 성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광개토왕비와 너무 많이 떨어진 충주부근에 중원 고구려비에서 고모루성의 수사(군수급 관리)가 등장하는 것은 의아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전설의 성 고모루성을 마침내 찾아냈는데, 그동안 신비에 쌓였던 고모루성이 위치한 곳은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고모리 고모산 정상부를 에워싼 해발 380m지점이었습니다. 성의 위치는 국사편찬위원회 최근영·민덕식씨(교육연구관)에 의해 밝혀졌으며, 지난 1년간 철원과 포천 그리고 연천, 파주일대를 30여차례 답사한 끝에 찾아낸 것입니다.
조사자들은 고모루성이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를 막는 최후의 방어기지였다고 주장하면서 고구려 역시 고모루성을 함락시킨다면 거침없이 한성까지 쳐내려올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 이 성을 남하정책의 전진기지로 이용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백제인이 쌓은 고모루성은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공략했을 때(396년) 한강유역까지 진출한 고구려가 함락시킨 여러 성중의 하나로 학계는 보고 있으나, 그동안 그 위치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병도박사는 광개토대왕때의 대백제 정복의 범위로 보아 오늘의 경기도지방과 강원도일부의 테두리 안에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으며, 천관우씨는 임진강과 한강하류 일대 로 보았었습니다. 일본인 정상수웅은 충남 덕산으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성내에서 수습된 다수의 토기조각들은 백제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그중엔 백제초기(철기시대)에 속하는 토기조각들도 다수 발견되어 이 성을 처음 쌓았던 시기는 백제초기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성은 개축된 흔적을 엿볼 수 있으나 대부분 붕괴됐으며, 성내에서 장대지, 정지, 성지 등이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모루라는 지명은 지금도 이 일대에 많이 산재해 있으며, 고모루라는 의미는 큰 마을을 뜻하는 백제초기의 지명으로 추정합니다. 이 성은 마을주민들에 의해 고모리성으로 구전되어 왔습니다. 성의 둘레가 822m나 되어 당시로선 매우 큰 성으로서 흙과 돌이 뒤섞인 토석성입니다.
고모루 산성길
고모리 저수지 산책로에서
고모리 저수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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