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價珍用無盡 利物應時終不悋 무가진용무진 이물응시종불인
무가보는 써도 다함이 없나니
중생 이익하며 때를 따라 끝내 아낌이 없음이라
다함이 있는 것은 가치가 정해지고 따라서 가격이 매겨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무가보는 써도 다함이 없다. 부증불감(不增不減)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써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지도 않고 신기하게도 항상 여여하게 빛나고 있다. 그래서 무가보를 가지게 되면 더 이상 밖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거나 안에서 자기 자신을 달달 볶아 더 짜낼 것도 없다.
또한 무가보는 자타(自他)에 있어 모두가 이롭게 작용하므로 삶의 근본 가치가 바로 자리이타에 있음을 가르쳐준다. 즉, 자기는 희생하고 타인은 덕을 보는 그러한 것은 대우주에 없다. 왜냐하면 자기희생은 곧 자리(自利)가 되기 때문이고 자타 분별없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가보는 베픎이 때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우리가 원할 때마다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릇이 비워질 때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나의 그릇이 비어 있는 순간은 잠시도 없다. 다만 자신의 욕망에 따라 내용물이 색깔만 바뀌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이 자기가 넉넉한 줄을 모른다. 그리고 마음이 번뇌 망상이나 욕망으로 꽉 들어차면 더 채워줄 공간이 없어지니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이 때는 운명적으로 정해진 때도 있고 자기가 잘 해서 만드는 때도 같이 있게 된다. 운명이 많이 기다리게 하면 자기가 미리 그릇을 비워놓으면 무가보가 일찍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 때를 잘 알고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자기가 스스로 다 비우고 빈 그릇을 무가보가 다 채워주는 순간을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한다. 고생 끝의 낙인 것이다. 그 때 채워진 빛을 발한다.
자기에게 있는 것 전부가 자기에게 완전히 채워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해탈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해탈(解脫)은 바로 그릇 자체를 깨부수는 것이다. 그릇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한계가 있고 욕망의 거품은 그릇보다 항상 더 크게 마련이니 당연히 불만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최종 해답은 해탈이 됨이 당연하다. 열반은 산산조각 난 그릇조각을 깨끗이 청소하여 티끌하나 남기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합해서 해탈열반이라 한다. 그러면 다시 불가마에 들어가 뜨거운 불 맛을 보면 구워지는 고통을 영원히 면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자성을 본다고 그릇을 허구한 날 들여다보면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그릇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변하는 것은 밥그릇에서 물그릇일 뿐이다. 그래서 확고부동한 결심과 단번의 실천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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