淨五眼得五力 唯譄乃知難可測 정오안득오력 유증내지난가측
오안을 깨끗이 하여 오력을 얻음은
증득해야만 알 뿐 헤아리긴 어렵도다
오안(五眼)이란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인데, 5안을 깨끗이 한다 함은 자기의 번뇌망상인 주관적인 안목에 사로잡혀 그것이 전부인 줄 아는 속좁은 소견에서 벗어나 5안을 드러낸다는 뜻인데, 다시 역으로 말하면 우리 모두가 5안을 갖고 있지만, 분별망념이 5안을 덮고 있으므로 5안을 가지고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깨끗이 한다는 정(淨)은 더러움과 상대되는 깨끗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고 더러움의 양단에 대한 분별의식을 모두 소멸시키는 것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된 것을 깨끗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5안을 새로 갖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데 분별망심에 덮여 가려져 있으니 잘 닦아내버리면 되는 것이다. 또한 5안에 대해 차별과 단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이 5안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5안을 드러내게 되면 神을 갖고 유치한 놀이를 일삼는 형식적인 종교가 더 이상 인간 세상에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5안을 깨끗하게 해서 일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아는 대지혜를 얻기도 하고 그와 더불어 선근(善根)을 증장시키는 다섯 가지 종류의 힘도 생기는데, 그것을 5력(五力)이라고 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 성격의 힘은 하나같이 중도를 향해가고 중도를 유지하며 중도를 이루는 데 필요한 성격의 힘이다.
첫째로 신력(信力)은 믿음의 뿌리를 강하게 키우는 힘으로 모든 삿된 믿음을 깨뜨리는 힘이다. 믿는 데는 큰 힘이 필요한데 그것은 개별체로서 분별심에 의해 취사(取捨)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나 자신은 神과 어긋나기 때문에 항상 불신과 회의가 쉽게 지배하게 된다. 이것을 떨쳐내는 것이 바로 믿음을 깊게 할 수 있는 의지력 내지 정신력이다. 그런데 실제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큰 덕을 보는 이런 강한 정신력을 가지려면 대우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5안을 깨끗이 할수록 믿는 힘이 커지게 마련이다. 신력은 믿음의 완성 - 믿음과 불신의 양단이 떨어져나간 텅 빈 자리에서 저절로 크게 나오는 불변의 믿음 - 으로 대도를 증득하는 힘이다.
두 번째로 정진력(精進力)은 보이지 않는 대우주를 향해 실제로 발걸음을 떼는 데 필요한 힘이다. 만일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면 불안해서 발걸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5안을 깨끗이 해서 잘 보이게 되면 발걸음을 쉽게 뗄 수 있으며, 자연히 몸의 게으름과 편하고자 하는 욕망 속에 자신을 빠트리지 않게 된다. 이 때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력이 강해지므로 자연히 정진력이 생겨나게 된다.
세 번째로 염력(念力)은 목표를 정해 두뇌의 집중에서 발생되는 강력한 힘이다. 염력은 강한 집념 내지 집중력으로서 神을 항상 마음 속에 담아두는 힘이다. 5안이 깨끗해지면 번뇌망상이 사라지니 염력은 저절로 생겨나게 된다. 염력은 목표를 놓치지 않으면서 정신력의 기초를 이루니 목표와 과정의 괴리에서 오는 마음을 조정하게 된다. 그래서 과정 속에 목표를 담고 목표 속에 과정을 담아 치우치지 않으니 바르게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네 번째로 정력(定力)은 모든 어지러운 번뇌망상들을 끊어버리는 힘이기도 하고 선정(禪正)에 들어서 자기 불성과 영혼이 몸을 통해 나오는 힘이기도 하다. 5안이 깨끗해져 일체가 보이면 집착할 것도 바랄 것도 화낼 것도 모두 사라지므로 망념이 일체 사라져 내면이 저절로 고요하게 된다. 그 때의 내면은 텅 비어 큰 힘을 얻게 된다. 정력(定力)은 텅 빈 공허와 산란함의 양단을 제어하게 되는데, 빈 곳을 더욱 빈 곳으로 정밀하게 유지해 나가는 힘이다.
다섯 번째로 혜력(慧力)은 지혜를 얻고 키우는 힘이다. 많이 보고 알수록 미혹은 떨어져나가고 지혜는 밝아지니 지혜의 힘이 생기고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깨끗한 5안이 없다면 수행할수록 미혹하게 될 뿐 정작 자기를 향상 일로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5안이 깨끗할수록 분별망상이 줄어들고 밝음이 키워지니 이것이 혜력(慧力)이다. 혜력은 바른 것(正)과 그른 것을 잘 구분하여 마장(魔障)에 빠지지 않도록 해준다. 여기서 바른 것(正)이란 양변을 벗어난 차원이다.
이렇듯 힘을 분류할 때 다섯 가지로 분류하지만 그것에 대한 근본은 하나다. 그 근본은 바로 법력(法力)이고 우주의 힘이다.
실제로 이러한 것들이 직접 얻어서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오로지 증득(證得)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헤아리고 애써봐야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런데 의문과 불신은 서로 다른 것이니 불신을 갖고 접하면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고, 의문을 가지고 접하면 의문을 키우면서 그 의문을 끝까지 잘 유지하며 단계적으로 풀어가며 얻는 것이 바른 것이다.
불법은 이렇게 스스로 확인하고 체득하고 일체가 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해주는 가르침이고, 맹목적으로 믿으라고 강요하는 가르침이 아니다. 맹목적으로 믿어봐야 신력(信力)만 조금 키워질 뿐 아무 것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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