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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관련/불법(佛法)관련

유(有)와 무(無), 허(虛)와 실(實) 그리고 공(空)

by 우둥불 2016. 4. 20.



없애려 하는 유(有)와 무(無)의 경계는 있는 그대로의 유와 무가 아니라, 내 마음이 머물고 있는 주관적 대상으로서의 유와 무이다. 즉, 인연관계에서 형성된 유와 무이다.


서로 의지하고 있는 유와 무의 양단을 없애면 곧바로 공(空)에 들어가지만, 이런 경우는 전생에 이미 유와 무의 상대성(相對性)을 벗어난 차원에 있던 상근기자가 금생에 태어나 도를 닦아 단박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마음을 일으켜 갇혀 있는 상(相)의 세계인 현상계에서는 유와 무를 어느 정도 벗어나면 대부분에게 일단은 허(虛)와 실(實)이 나온다. 이 허와 실을 또 한번 벗어나면 그때서야 공(空)이 되는 것이다.


이른 바 유(有) -> 무(無) -> 허(虛) -> 실(實) -> 공(空)이 되는 것이다. 유를 넘어서면 허를 마주하고 무를 넘어서면 실을 맞이하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의 분별을 넘어서게 되면 텅빈 자리가 되고 그 자리에서 점차 새로운 것 - 자기 안에 여전히 있는 것이지만 그 동안은 전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 것 - 이 나오고 그것마저 비우면 공(空)이 성취된다.


이 모두를 풀어헤치고 벗어나면 이르게 되는 자리인 공(空)은 곧 중도(中道)고 진여법계(眞如法界)며,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고, 절대세계(絶對世界)며, 신(神)이며, 부처(佛)이고, 천지자연(天地自然)이고, 대도(大道)이며,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인 것이다.


한 안타까움과 자비(慈悲)이니 현상계의 유와 무에 따른 고통이 있음으로서 공(空)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空)은 우주의 힘으로서 유와 무, 허와 실을 모두 포함하여 자유롭게 활용하니 드디어 주인공(主人公)이고 언제 어디서나 주인이 되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


공(空)이 운용하는 유는 창조가 되고 무는 파괴가 되며, 허와 실은 유지와 변화가 된다. 이른 바 자기존재는 생멸에서 벗어나 영원불멸이며 창조와 유지, 파괴의 순환을 자유롭게 관장한다.


창조와 유지, 파괴는 하나의 힘에서 비롯되니 현상계를 궤뚫는 진여법계에서 보자면 유와 무는 상즉상입(相卽相入)으로서 유가 곧 무이고 무가 곧 유이다. 이때 유무(有無)에서 공에 이르는 것이나 공에서 유무허실을 내고 관장하는 것이나 일체가 법(法)에 의거하는 만큼 법에 잘 의지하여 법을 깨달으면 공을 보고 공을 이루면 법을 모두 보고 알게 된다. 그래서 무아(無我)로서 승(僧)이 되니 비로서 불법승(佛法僧)이 하나가 되어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상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깊이 골몰하며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자기의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린 상태가 된다. 그 상태가 순간적으로 공의 상태가 되어 공으로부터 창조의 덕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짧게 공에 머물다 금방 상대적인 유무(有無)로 나와 버린다. 


공의 힘을 받아들이며 아신일체(我神一體)로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주로 하는 수행에서는 허(虛) 차원에서 청정하고 집중된 마음을 가지고 공의 힘을 끌어오는 진언(眞言)과 수인(手印)을 같이 활용한다. 진언으로서 전생업장의 방해를 해소하고 수인으로 뜻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자기 마음이 유무을 넘어서 허실(虛實)차원에 이른 단계에서야 효과를 보게 된다. 왜냐하면 공은 완전히 비어 있는 순수한 자리에 들어차는데, 현상계의 유무는 강하게 뭉쳐진 덩어리로서 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有 卽 是 無  無 卽 是 有

유 즉 시 무  무 즉 시 유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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