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믿고 수행과 참선을 하는 불교는 도(道)를 닦아 신령세계와 실상을 정확하게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이 해야 할 바를 그에 맞게 제시해왔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영적(靈的) 공백을 도(道)를 대신하여 생각을 바탕으로 한 사상과 철학과 인간의 종교로 채웠는데, 그것은 망념으로 만든 기독교의 유일신앙인데다가 이분법적 믿음으로 왜곡되니 신(神)과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신앙에 도(道)가 없는지라 당연히 내면이 분열되고 거기서 파생되는 고통을 물질로 위로하게 되니 순수한 신앙이 아니라 현상계에서 잘되면 무조건 신이 은총을 내린 것이라는 미신적인 물질기복신앙으로 만들어 종교의 세속화를 가속시켜 어둠이 심하게 깊어졌다.
신(神)은 형식이 되고 물질은 내용이 되는지라 마침내 신(神)은 떠나고 악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돈이 도(道)의 용(用)이 되지 못하고 집착으로 소유만으로 남는 한, 물질은 악마의 굳건한 성(城)이 된다. 그리고 특성상 6근(根)의 경험을 넘어설 수 없으며 또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무조건 한 변(邊)에 치우칠 수 밖에 없으니 진리가 아니고 그 한계가 분명하게 된다. 예수님이 진리를 부처님처럼 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전파할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이제 서양은 단편적인 생각마저도 막혀버렸다. 그리고 과학과 종교의 대립마저 심해지면서 혼돈에 휩싸여 길을 잃고 표류하다가 비로서 부처님의 법을 통해 일체의 모순을 해소하고자 도(道)에 들어오려고 애쓰고 있지만, 분별심과 생각의 습성이 너무 강하게 남아 있어 도(道)와 여전히 천지차이다.
도는 신(神)과 영적(靈的) 안목과 직관(直觀)과 생각이 하나로 이어질 때, 비로서 온전하게 도(道)를 향할 수 있게 된다.
非 思 量 處 識 情 難 測
비 사 량 처 식 정 난 측
생각으로 헤아릴 곳 아님이라 의식과 망정으로 측량키 어렵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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