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험난한 상황에 처해 괴로운 마음이 가득할 때 쓰러지는 근본이유는 힘든 상황 때문이 아니라 편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즉, 현재와 상반되는 마음에 머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현실에 따른 괴로운 마음은 더욱 강해지고, 괴로운 마음과 편안해지려는 마음이 내면에서 서로 싸우게 되는데, 그 때 그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힘이 더욱 약해지며 더욱 힘들게 되니 마침내 법과 현실을 등에 업고 있는 괴로운 마음이 최종승자가 되어 버린다.
힘든 상황과 큰 괴로움은 살다가 생기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대개 인과가 개입되어 있으며, 이것은 법(法)의 작용이므로 직접 이것을 대상으로 어떻게 한다고해서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려고 마음이 달라붙으면 붙을수록 더욱 더 업에 걸리게 되고 더 어지럽게 되고 만다. 더구나 편하고 싶은 마음을 내세워 괴로운 마음을 대상으로 억누르거나, 회피하거나, 없애거나, 바꾸어보려는 등 어떻게 해보려고 애쓰는 것은 괴로움에 마음을 덧붙여 잡초에 비료를 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일 뿐이다.
위와 같은 행위는 불법(佛法)이 아니므로 천지자연의 도(道)에 어긋나게 되니 당연히 힘든 상황이 더 오래 지속되며 견디기가 점점 더 힘들어간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그 괴로운 그 마음을 손대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리고 괴로울 때 그것을 지속시키는 진짜 원인인 편하고자 하는 마음을 진정으로 없애가야 된다. 이것은 나의 욕망이므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면 그에 따라 괴로운 마음도 위세가 약해지면서 점차 사라진다. 둘은 뿌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괴롭더라도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나가면 그 동안의 괴로운 마음은 인용과 업장소멸로 이루게 된다.
이렇듯 괴로울 때 편한 마음을 간택하지 않으면 이렇게 근본적으로 힘든 상황을 벗어나게 된다.
그러면서 편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가는 자기 자신에 머물지 않고 계속 나아가면 마침내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행하는 것이 불법에서 마음을 다스린다고 표현하는 것이고, 당연히 진여법계인 지극한 도에 이르는 길이 된다.
아주 험난한 상황은 극락 아니면 지옥으로 향하는 길림길이니 이 때 불법을 잘 알고 있다면 극락으로 향하게 될 수 있다.
至 道 無 難 唯 嫌 揀 擇
지 도 무 난 유 혐 간 택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