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활동/이것저곳155 명지계곡의 명지폭포 명지산은 오래토록 다녔지만 명지폭포는 처음 내려가봤군요... 역시 등산보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니 좀 더 세세하게 사물을 보는 듯 합니다. 2012. 5. 18. 5월의 서울 한강주변 5월 들어 시야가 확트인 2012년 5월초의 서울 한강변의 어느 날 풍경입니다. 옥수동에 위치한 매봉산에 올라 성수대교를 바라보니 주변으로 시원한 전망이 펼쳐 있습니다. 2012. 5. 6. 파주 벽초지 문화 수목원 꽃이 화사하게 피는 날 즈음에 모처럼 한적한 수목원을 찾아보고자 파주에 위치한 벽초지 문화(?) 수목원이라는 곳을 찾았다. 수목원이면 수목원이지 문화 수목원라는 문화라는 단어가 앞에 붙는게 뭐지? 하며 1인당 8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수목원을 1/3쯤 둘러 보고나선 아.. 이건 심.. 2012. 4. 30. 청계천 판잣집 60년대 서울 청계천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던 나로서는 아직도 청계천 바닥까지 길다란 목축에 의지한 채 청계천변에 허술하게 지었던 청계천 판잣집들을 기억에 떠올릴 수 있는데, 마침 최근에 청계천 어디쯤에 청계천 판잣집을 재현시켜 놓아 지나다 반가운.. 2012. 2. 19. 횡계 눈꽃 축제장 풍경 2012. 1. 16. 성리학 근본주의자 정조비판 정조는 지적인 면에서 18세기 어떤 성리학자보다 탁월했기에 일부 역사가들이 그를 개혁군주로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이념적 성향은 결코 진보적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이념을 추구한 바 없으며, 정치 제도 또한 근본적인 혁신을 꾀한 적이 없다. 정조는 사실 조선 왕조의 오랜 국시(國是)인 성리학의 함양을 부르짖었고, 당시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던 실용주의적 가치관으로 비롯된 문화적 혼란상을 극복하기위한 해결책을 성리학의 근본주의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그 해결책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문체반정'이다. 정조는 문체의 흥망성쇠는 정치현실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당시의 문체가 위미(萎靡)하여 근심스럽다고 하면서 문체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정조는 육경을 진짜 고문이라고 하면서 그 정.. 2012. 1. 11.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