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추운 겨울에 한강에서 얼음을 떼어내서 얼음창고에 보관을 했습니다. 이때 나라에서 관리하는 얼음창고는 동빙고, 서빙고, 내빙고가 있었는데, 지금의 옥수동에 있던 동빙고는 나라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얼음을 저장했고, 서빙고동에 있던 서빙고는 왕족이나 조정 대신, 각 관아에 나누어 쓸 얼음을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창덕궁 요금문 안에 있던 내빙고는 왕에게 바칠 얼음을 저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의 왕들은 얼음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빙고에 얼음이 제대로 관리가 되는지 직접 보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겨울 철에 한강의 얼어 있는 얼음은 두께 4치 이상으로 얼면 채취를 하였는데, 얼음 채취를 할 때는 칡 끈을 얼음 위에 깔아 놓고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했으며, 강가에는 장작불을 피워서 인부들의 추위와 동상에 대비했다고 합니다. 인부는 관원과 군인 뿐만 아니라 빙고 근처에 사는 백성을 동원하였는데, 이들을 ‘장빙군’이라고 불렀습니다. 일하는 방법은 톱으로 얼음을 잘라내면 동아줄로 묶고 나무에 엮어서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조심스레 옮겼다고 합니다. 얼음을 떠서 잘라내어 빙고까지 옮기는 일이 어찌나 힘들고 고되었는지 강에 얼음이 얼 때쯤 되면 빙고 근처의 장정들이 밤에 몰래 달아나 버려서 겨울에 한강 근처에는 생과부가 된 여인들이 생겨서 이들을 ‘빙고 청상’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조선 전기가 지나면서 어물전, 푸줏간 등에 얼음 수요가 크게 늘어나 이들 가게에 얼음을 공급하는 얼음장사꾼이 생겨났고, 이 얼음장사꾼들은 양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빙고’라는 얼음창고를 지어 한겨울에 한강에서 채취한 얼음을 보관했다가 팔았다고 합니다. 또한 ‘빙계’라는 시전 상인들도 한강 근처에 사는 장정들을 장빙군으로 고용하여 얼음장사에 뛰어들면서 한강 주변에는 사빙고가 30여 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빙군이란 일은 당시로서는 엄동설한에 추위와 싸우며 얼음을 깨다가 물에 빠지거나 동상에 걸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직업이었습니다. 따라서 해마다 12월이면 사한단에서 제관이 하늘에 안전을 비는 제사를 지낸 뒤에 한강에서 얼음을 뜨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장빙군이란 직업은 역사적으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사기> 지증왕 6년에 나라에서 빙고를 관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후로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장빙군이란 직업인을 통하여 얼음을 채취하고 보관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장빙군은 얼음의 필요성 때문에 생겼는데,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극한 직업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노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그 시절에도 귀한 얼음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장빙군은 임금도 인정하는 고된 직업이었는데, <조선왕조실록><세종편> 세종2년에 “장빙군에게 술 200~300병을 하사했다”라는 기록이 있고, 또 <세조편> 세조13년에는 “환관, 선전관을 동빙고와 서빙고로 나눠 보내어 약, 음식, 술을 가져가서 추위에 얼어 병이 난 자를 치료하게 했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런 기록을 보면 당시 국가에서는 장빙군의 노고를 알고 많이 배려해 주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끝.
이 글은 역사 칼럼니스트, 아동문학가이신 신현배님의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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