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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활동/이것저곳

이몽룡과 성춘향의 고향 남원시 광한루원 탐방

by 우둥불 2022. 2. 21.

춘향 일색의 도시라고 생각될 정도로 남원시에는 몽룡과 춘향의 사연이 얽혀 있는 곳이 많습니다. 특히 전주시에서 남원 시내로 들어오는 국도변의 박석고개(박석치 ; 남원시 사매면 대율리)에는 한양으로 떠나는 이도령과 춘향이 애절한 이별을 했다는 오리정(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27-1), 춘향의 눈물이 떨어져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는 오리정 앞에 있는 눈물방죽, 오리정에서 춘향이 이도령을 이별하고 돌아오다 버선을 벗어던져 생겼다는 버선밭(남원시 사매면 오신리 421), 버선발로 돌을 비볐다는 박석터 등이 있어 ‘춘향고개’(남원시 사매면 관풍리 792)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으며, 고개를 지나는 터널 이름도 ‘춘향터널’입니다. 그런가 하면 지리산 정령치로 향하는 길목인 구룡계곡(육모정)에는 춘향묘(남원시 주천면 호경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춘향 이야기가 현실처럼 더 가깝게 느껴지는 곳은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남원시의  '광한루'(廣寒樓)일 것입니다. 

 

 

광한루원

 

광한루원은 광한루와 연못, 못 속에 있는 세 개의 섬(삼신산), 오작교 등으로 꾸며진 누원 외에 춘향사, 충혼각, 남원국악원, 완월정 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광한루원은 누원으로서보다 춘향과 이도령이 만난 무대로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곳은 우리나라 조경사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왕조의 성립 이후 궁궐의 후원을 꾸미면서 우리 조경문화는 음양오행 사상과 풍수지리 사상의 토대 위에서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이 결합되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광한루원은 바로 조선 전기 궁궐에서 완성된 조경문화가 민간으로 확산되는 과정의 산물이며,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는 요소들로 가득 찬 독특한 누원이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광한루

 

조선 초 황희가 남원으로 유배와서 '광통루'라 이름하여 지은 건물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인조 16년에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여 오늘 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광한루의 최초 역사는 1170년 무신의 난으로 벼슬을 버리고 남원으로 내려온 황공유의 후손인 황감평이 지은 '일재'(逸齋)라는 조그만 서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 그의 아들인 황희(黃喜, 1363~1452)가 태종의 ‘양녕대군 폐위’를 반대하다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痛樓)라 하였던 것을 세종 16년(1434)에 남원부사 민여공이 중수하고, 이듬해 전라감사였던 정인지가 누에 올라 경관을 감상하다가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부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 하고 감탄하였다는 데서 광한루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461년 부사 장의국(張義國)이 광한루 앞을 흐르는 요천을 끌어다가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은하수에 가로막힌 견우성과 직녀성의 칠월 칠석날 만남을 상징하는 오작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건물은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인조 16년(1638)에 남원부사인 신감이 복원한 것입니다.

 

광한루는 연못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막돌바른층쌓기로 된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사각의 돌기둥을 세워 마루 밑에 이르게 하고 나무기둥을 그 위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짜리 중층 팔작기와집인데, 오른쪽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가 덧붙여져 있는 형태입니다.

2층 바닥은 원래 귀틀을 짜고 점판을 깐 우물마루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지금은 장마루로 되어 있고, 주위에 계자난간으로 둘렀으며, 기둥 사이에는 모두 분합문의 들창을 달아 시야가 시원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밀양 영남루, 삼척 죽서루, 진주 촉석루 등이 들창이 없는 구조인 점에 견준다면 이는 다른 누각과 다른 광한루의 독특한 개성이라 하겠습니다.

동쪽에 잇댄 익루(翼樓)는 삼면을 툇마루를 돌려 개방하고 그 안쪽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온돌방을 두었는데, 따라서 익루의 1층은 온돌방의 아랫부분이므로 벽체로 두르고 여기에 아궁이와 굴뚝을 들였습니다.

광한루 뒤쪽으로는 누에 오르기 위해 만든 층단이 정면 1칸 측면 3칸의 회랑식으로 가설되었는데, 이는 광한루의 본관이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지자 고종 14년(1877)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수지면에 사는 대목 추씨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기울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북쪽 층단은 우리나라 건축사상 누각에 현관을 가설한 첫 시도로써 외관이 더욱 화려해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광한루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안에는 ‘호남 제일루’ ‘광한루’ ‘계관’ 같은 현액들이 걸려 있으며, 강희맹, 김시습, 김종직, 정철 등의 시문이 걸려 있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광한루

 

오작교 위에서 바라본 광한루

 

 

춘향사당


광한루원 산책은 요천가에 세워진 정문인 남문(청허부)을 통해서 광한루원으로 들어서면서 시작되는데, 광한루에 들어서서 오른쪽의 산책길로 끝까지 따라가면, 그 길 끝인 광한루 오른쪽 가장 끝에 춘향의 절개를 상징하는 듯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춘향사당(春香祠堂)을 만날 수 있습니다.

 

춘향사당은 춘향의 영정을 모신 곳인데, 이 춘향사당은 1920년대에 건립하여,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은 곳입니다.

 

산책길 중간에는 성이 같아 춘향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하는 남원부사 성안의의 비석이 춘향사 옆의 선정비들과 별도로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방장정/봉래섬/영주각


광한루 앞의 연못은 1:2의 비율을 갖는 장방형으로 축조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본떠 만든 세 개의 인공섬이 있습니다. 이 섬들은 1582년 정철(鄭澈)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만든 것으로 오작교 곁에 있는 영주섬에는 연정(蓮亭)을, 가운데 봉래섬에는 배롱나무를, 그 옆의 방장섬에는 방장정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영주섬에는 1963년에 세운 육모정인 방장정이 있으며, 방장섬에는 1795년에 세운 영주각이 있는데, 영주각은 1965년 새로 단장되었다고 합니다.

 

삼신산 중에 하나인 방장정(지리산)

 

삼신산 중에 하나인 영주각(한라산)

 

뒤쪽에서 바라본 영주각과 봉래섬(금강산)

 

앞쪽에서 바라본 영주각

 

 

오작교


연못 위에 드리워진 오작교는 난간 없는 아름다운 네 개의 홍예로 구성되어 있고, 본래의 크기는 길이 약 25m, 너비 2.6m, 높이 4m에 이르렀으며, 노면은 크고 작은 장방형 돌로 모자이크 하듯 리듬 있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63년과 1990년 광한루원을 확장할 때 두 차례에 걸쳐서 다리를 남쪽으로 더욱 연장하여 지금은 길이가 50m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영주각에서 바라본 오작교

 

오작교와 그 너머로 영주각이 보입니다.

 

 

자라상


연못가 한 귀퉁이에 있는 길이 약 2.4m의 자라상은 삼신산이 조성될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곳에 자라상을 놓은 이유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신선사상에 연유해 자라로 보는 전설과 풍수지리상 천재지변을 몰고 오는 지리산의 동남풍을 제압하기 위한 거북으로 보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완월정


오작교 건너에 있는 완월정은 1969년 광한루원 확장 시에 기존 연못을 확장하고 주변을 정화하면서 새로 지은 수중 누각인데, 광한루가 달나라의 궁전을 재현한 것이라면, 완월정은 지상의 사람이 달나라를 즐긴다는 뜻으로 세워진 건물입니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겹쳐서 만든 팔작지붕으로 된 누각으로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이곳은 해마다 춘향의 생일인 사월 초파일 광한루원에서 치러지는 춘향제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완월정과 연못

 

 

 

월매집/춘향전 기념관

본래 광한루원은 6천여 평이었으나, 여러 차례에 걸친 확장공사 끝에 춘향을 떠올리게 하는 각종 장면이 재현된 춘향전기념관, 춘향과 이도령이 백년가약을 맺은 부용당, 춘향의 어머니가 살았다는 월매집 등이 추가되어 현재는 1만 7천여 평에 이르고, 서울의 경복궁이나 창경궁의 궁궐과 같이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호남 문화재 중에 으뜸의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몽룡과 성춘향과의 연분 얘기와는 별개로 부엌에서 서로 정을 쌓고 있는 방자와 향단의 모습을 구현한 모습 - 월매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