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 미시령 - 상봉 - 신선봉 - 대간령(새이령) - 마장터 - 소간령 - 창암마을
일 자 : 2005년 12월 18일 (일) 11시 - 17시
날 씨 : 몹시 춥고 바람이 심함
인 원 : 35명
지난 6월에 친구와 함께 신선대 능선을 오르고 나서 복잡한 설악산길과 달리 호젓한 바위능선길에 대해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우연치않게 동우회와 함께 다시 찾게된 이곳이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등정 예정지는 미시령에서 백두대간길을 따라 대간령(새이령)을 기점으로 재정리 되었으나 이곳 역시 나에게는 인연이 있는 길이었다.
버스가 우리를 시발점인 미시령에서 내려놓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드센바람이 사람 한명쯤은 날려 보낼 것 같았고 가뜩이나 동쪽으로 가파른 절벽을 형성하고 있는 백두대간길에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어떤 여자분은 바람에 밀려 몇 발자욱이 밀리는 광경을 보니 아찔하다. 아마도 상봉 근처에 너덜바위지대에 이르면 더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동쪽 사면이나 나무지대를 통과할때는 그나마 바람을 막아주니 위안이 된다.
얼마간 올라 능선에 올라서니 신선대 능선과 이어지는 샘터에 도착했다. 샘터는 낙엽에 덮여 형태를 찾기 힘들었고 그나마 낙엽을 헤쳐 찾아보니 6월에 그렇게 시원하게 해주던 물이 아예 메말라 있었다. 설악이 여름과 겨울의 환경이 얼마나 달리하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 북설악 능선에서 >
드디어 걱정했던 상봉근처에 도달했다. 예상했던대로 무지막지한 바람이 몰아친다. 너덜바위 하나하나를 잡고 위험을 무릅쓰고 봉우리를 향하는 회원들을 바라보자니 애처로워 동료애가 더욱 애뜻해진다.
계획대로라면 상봉에서 사진촬영도 하고 음식도 나눠먹으며 산행즐거움을 만끽했어야 하는데 드센 바람이 도무지 잠시나마 서있을 틈을 주지 않는다. 바로 신선봉으로 향하면서 미련이 남아서 저멀리 설악쪽을 바라보니 대청과 중청 그리고 공룡의 천화대가 자욱하게 저멀리 자태를 보인다.
다시 돌아서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북설악에 마지막 암봉인 상봉 바윗길은 드센 바람과 더불어 발걸음에 여유로운 틈을 주지 않는다.
화암재에 이르러서야 그나마 적은 바람에 여유를 갖고 대체로 빠른 점심을 하고 약간에 알콜을 나누며 다시 이 산행에 정점인 신선봉을 향한다.
드센바람에 더이상 크지도 못하는 나무가지에 이리저리 쏠리며 오른 신선봉에서 바라본 동해에 장쾌한 광경이 힘든 산행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듯 하다.
신선봉에서 대간령으로 내리는 내리막길에서 잠시 길을 잃어 머뭇했지만 현재 이글을 쓰면서 기억을 가다듬어 보니 오래전에 길과 최근들어 종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혼동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오른쪽(동쪽)으로 나무가 촘촘히 나 있는 수백미터에 90도 깍아지른 절벽에 혀를 내두르며 얼마쯤을 내려가니 오늘의 마지막 기점인 대간령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강원도에서 동서를 넘나드는 고갯길을 얘기하면 대관령을 비롯해서 한계령과 미시령 그리고 진부령을 알고 있으며 여기에 최근 10년새에 만들어진 하나를 더붙이자면 구룡령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차량통행이 가능한 일반적인 고갯길외에 백두대간을 해 본 산꾼들만 아는 고갯길 몇개를 더 얘기하자면 그것은 바로 단목령과 조침령 그리고 대간령(새이령)이란 고갯길이다. 물론 이러한 고갯길은 우리 조상들이 수백년전부터 동서를 넘나들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은 고갯길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2005년 12월 18일 그 차겁고 드센 바람을 맞으며 시작한 등정로가 바로 미시령이고 그리고 느슨한 바람을 맞으며 내리막길을 맞이한 것이 바로 대간령(새이령)이다.
개인적으로는 십수년만에 찾아온 대간령이라 나로서는 반가운 마음이 그지없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옛사람들이 고개마루을 넘나들며 휴식처로 삼았을뻔한 돌무더기는 여전하였고 그 자리에서 라면 하나 끓여먹고 마산을 넘어 진부령을 향하던 그때 생각에 잠시나마 기억을 되살려 본다.
지금은 차량을 이용하여 앞서 얘기한 고갯길들을 넘어 동서를 가르고 있지만 60년대까지 속초사람들은 서울을 가기위해 다녔던 주 고갯길이 바로 이 대간령 길이었다한다. 고갯마루가 641m에 으외로 낮은 고갯길이라 아마도 당나귀나 말을 이용하거나 그것마져 힘들면 그냥 걸었어야 했던 그 시절에 이쪽 사람들은 이 대간령만 지나면 서울이 지척이라 여겼을 것이라....
대간령에서 얼마를 내려와 마장터란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그 옛날 고개를 넘어다니던 객들이 흔히 묵으며 말이 쉬어가던 마을이었는데 한때 40호가 넘는 사람이 살았었지만 지금은 두 사람 정도가 살고 있다는 이곳은 통나무로 만든 집과 짚으로 만든 초가집이 주변경치와 어우려져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였다.
마장터를 지나 좀 더 내려가자 소간령이 나타났다. 소간령은 그 옛날 시골마을을 넘어가는 고갯길 같은 정겨움에 주변 경치가 저멀리 계곡사이로 저무는 겨울햇살과 더불어 한폭의 동양화 같은 경관을 나타내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를 내려줬던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에 다다렀다. 이곳은 지금은 비록 길가 주변에 보이는 몇 채에 가구뿐이고 냇가 건너편에는 군대 훈련장이 들어서 있지만 그 옛날은 대간령(새이령)을 오르는 길손들이 북쩍거리며 지났던 창암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라 한다.
옛 고갯길과 오랫만에 찾은 백두대간 최종구간을 밟아 본 나로서는 나름대로 감회도 있었지만 그러나 즐거운 겨울산행을 예상했던 기대감은 많은 사람과 더불어 좀처럼 실망스러웠지 않았는가 생각해본다.
다음 겨울산행 때는 좀 더 즐거운 산행을 예상해보며 다음을 산행을 기약하며...
'야외활동 >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봉산, 삼각산의 작은 폭포들 사진 (0) | 2006.07.01 |
---|---|
연천의 지장산(보개산) (0) | 2006.02.20 |
2005년 마지막 가을이 아쉬워... (0) | 2005.11.05 |
암벽 연습 사진 (0) | 2005.07.12 |
세월이 더 지나기 전에...(암벽등반) (0) | 2005.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