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 날짜 및 날씨 ;
2020년 9월 1일 (화요일) 오전 09시 35분 / 맑고 구름 낌 (섭씨30도)
라이딩 코스 / 주행거리 및 주행시간 ;
별내 중말사거리(출발) - 뱅이터널 - 왕숙천 자전거 길 - 광릉 국립수목원 - 고모리저수지(1차 휴식) - 마전리 삼밭길 - 수원산 전망대( 굴고개; 532m ; 2차 휴식) - 서파교차로 - 가평군 조종면 - 조종암(3차 휴식) - 청평 검문소 삼거리 - 청평역(도착) / 75km / 4시간 03분
라이딩 지도 ;
GPX 지도 ;
기상청에서 태풍이 오기 전이라는 예보를 하고 나서 아침부터 날씨와 공기가 최근 들어서 간만에 쾌청하고 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부터 경춘선 전철이 평일 자전거 탑승을 시범적으로 실시한다고 해서 모처럼 포천군 내촌에 위치한 수원산을 경유해서 청정지역인 조종천을 끼고 라이딩을 한 후에 청평역에서 전철로 귀가하는 것을 계획하였는데, 여기서 라이딩 중에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부끄러운 역사 속 유물 중 하나인 조종암(朝宗巖)을 경유해 보기로 했습니다.
조종천(朝宗川)은 조종면 상판리에서 발원해 동남쪽으로 흘러 북한강과 합류하는 개천으로 일명 청평천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조종천의 전체 길이는 39㎞정도라 하며, 조종천 주변에 나지막한 야산을 뒷동산으로 삼고 있는 면소재지가 조종면이고 또 그러한 조종천을 사이로 두고 다른 한쪽의 면소재지는 상면입니다.
조종천은 수도권 지역의 청정지역으로서 울창한 숲을 따라 절벽으로 이어지며 그 아래는 맑고 깨끗한 물이 잔잔히 흐르고 있습니다.
고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가평현 제영조에 조선시대 이맹균(李孟均)이 이곳을 지나며 감탄해서 쓴 글을 소개해 봅니다.
'일찍이 포천 가는 길에 굴파(屈坡)를 넘어 안장을 내리고 잠깐 조종에 쉬었다. 어지러운 산 깊은 골을 뚫고 가는데, 한 가락 길이 꼬불꼬불 굽이도 많다. 비록 말을 꾸짖으며 걷고 건너기 어려워도, 이 고을에 이르니 마음이 이미 시원하다. 높다란 화악산이 북쪽에 진좌하니 구멍에는 태곳적 눈이 아직도 쌓였다. 가닥진 여러 봉우리 온 고을을 감쌌는데, 천 가지 모습 만 가지 형상이 다 기절(奇絶)하다.'
이러한 조종천의 수려한 풍광 속으로 흘러가다 보면 조종천은 갑자기 활처럼 휘어지며 다리 하나가 놓여져 있는데, 그 다리 건너로 1km정도 개천을 따르다보면 조종암(朝宗巖)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에 위치한 조종암은 조선 숙종 10년(1684년) 당시 가평군수를 지낸 이제두(李齊杜)와 명나라의 허격(許格), 백해명(白海明) 등이 큰 바위에 글씨를 새긴 것을 말하는데, 내용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베푼 은혜를 잊지 말고,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부터 당한 굴욕적인 수모를 되새기자는 숭명배청(崇明排淸)사상을 추구했던 사람들의 뜻을 새긴 기념물입니다.
조종(朝宗)이란 본래 제후가 천자를 알현한다는 뜻과 여러 강물이 흘러 모두 바다에 모인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는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조종현(朝宗縣)을 설치하면서 이곳의 내를 조종천이라 하여 이 고장을 '조종'에 의미 부여를 했던 것으로 짐작되며, 그 후로 조선시대 후기에 명분론을 앞세운 숭명배청론자들에 의해 정신적 지주로 삼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그 당시에 조종암을 얼마나 섬겼는가는 당시 '조종암보존회'가 조직되고, 조종암에 관한 모든 자료를 모아 자세한 내력을 적은 '조종암문헌록(朝宗巖文獻錄)'을 펴낸 것만 보아도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당시에 지식인들이 모화사상에 찌든 상황으로서 우리 선조들의 슬픈 자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명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의종의 친필인 '생각에 삿됨이 없다 (思無邪)'를 허격이 가져와 맨 왼쪽 높은 바위에 새기고, 그 아래로는 선조(宣祖)의 친필 '萬折必東 再造蕃邦(만절필동 재조번방) 일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녘으로 흐르거니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다시 찾아주었네'란 내용이며, 또한 효종이 송시열에게 내린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지극한 아픔이 마음속에 있네' 라는 뜻의 ‘日暮道遠 至痛在心(일모도원 지통재심)'을 송시열의 서체로 각하였으며, 선조의 친손인 낭선군 이우가 '(명나라)임금을 뵙는 바위’ 라는 ‘朝宗巖(조종암)'을 새겼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은 한결같이 청나라를 쳐서 명나라의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북벌의 기회는 오지 않고 오히려 명나라가 청나라에 패하여 그 아픔이 크다는 것을 탄식하는 내용입니다.
'가평군지'에 따르면 바로 이곳 조종암에 단을 만들어 명나라 의종황제가 순국한 3월 19일에 보은의 제사를 지내면서 이곳을 조종암(朝宗巖)과 대보단(大報壇)이라 불렀고 따라서 마을 이름도 대보리(大報里)라고 불리어졌다고 합니다. 이는 숙종 30년(1704년) 서울 비원 안에 대보단(大報壇)을 설치하고 명나라의 태종과 의종,신종에 대한 제사를 지낸 데서 비롯되었는데, 이것은 속리산 화양구곡의 만동묘와 함께 모화사상의 대표적인 유물 가운데 하나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것과 더불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명나라에 정신적으로 정복당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렇듯 당시에 조선은 독립국가로서 국력을 키우기에는 정신적으로 너무도 허약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 유물로서 이 조종암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종암 바로 앞에 순조 4년(1804)에 조종암의 내력을 적어 세운 기실비(記實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기실비는 넓은 바위면을 기단석으로 삼고 장방형의 홈을 파서 세운 다음에 지붕돌을 얹었으며, 비문은 조진헌(趙鎭憲)이 짓고 김달순(金達淳)이 썼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28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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