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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활동/여행

평양방문

by 우둥불 2007. 11. 30.

이 글은 북한에 식량 지원목적으로 쌀을 인도할 때 인도 요원으로 북한지역 남포를 방문하여 그 와중에 틈을 내서 북한쪽 담당자의 배려로 잠시 평양관광을 한 것을 토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쓴 글입니다. 아울러 이 글의 어느 부분이라도 다른 곳에서 인용되지 않길 바라면서 글을 올립니다.

 

<첫 눈이 내린 남포항>

    

북한측 담당자의 안내로 그들이 자랑하는 평양시내를 관광하러 가는 중에 차창 바깥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삶의 터전을 보니 한마디로 내가 살고 있는 남쪽의 3-40년전 모습과 별 다를바가 없어 보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우마차에 짐을 싫고 가는 광경은 마치 60년대 남쪽의 그 모습을 보는 듯 하였다.

 

 

<남포항 주변에서 조각배를 타고 투망질하는 남포주민 모습>

 

그나마 60년대 남쪽과 차이라면 북한주민들이 주 교통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다수의 자전거를 타고가는 광경이 남쪽에서 주 교통수단인 자동차와의 차이였는데 더구나 기아가 없는 중고 자전거라 언덕이라도 있는 듯하면 자전거를 내려서 끌고가는 장면이 다소 이채로워 보였다. 


평양을 가기위해 남포에서 평양까지 개통한 고속도로는  우리가 알고있는 개념의 고속도로라기엔 무엇인가 부족함이 많은 도로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차량이라곤 전혀 다니지 않는 이곳에 왕복 10차선이나 하는 도로를 만들었는가하는 것이었고, 그 고속도로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그러한 도로를 마구 횡단하며 건너다니는 탓에 여유롭게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로 하여금 간혹가다 긴장감을 갖게 해주는 요소가 되었다.

 

<평양-남포간 10차선 고속도로>

 

더구나 도로 가장자리엔 주민들이 다니는 좁은 보도가 있었는데 이곳엔 남포에서 평양을 가는 40분 내내 자전거와 도보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복잡한 이동 모습이 계속 이어졌는데, 결국은 이 도로는 북한의 현재의 현실이 반영이 되지않은 그야말로 선전용 도로이거나 전시용 도로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그나마도 완공 후에 보수가 전혀 이루어지지않은 듯 도로면은 그야말로 최악이어서 자동차가 100KM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 상태에서도 갈라진 돌출부위에 의해 자동차바퀴가 '툭툭' 팅기기도 하였다.


평양시내는 11월 말이라 그런지(더구나 며칠 전 왔던 첫눈이 녹아내리는 중이라) 우리가 사진속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우중충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평양관광의 시발지는 그들에겐 신격화되어 있는 만경봉 아래에 위치한 김일성 생가부터 시작되었는데, 평양시내 서쪽에 위치한 생가앞에 우리의 차량이 도착을 하니 이미 단체로 온듯한 많은 북한 주민, 학생들이 줄을 서서 관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대부분에 북한 주민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리기 시작하였는데, 같은 씨를 가진 같은 종족임에도 불구하고 차림새는 물론 체형이나 체격면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어서 아무래도 그들에겐 우리가 이국적인모습의 이방인으로 보여지는 듯 하였다.

 

<김일성 생가>

 

여자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김일성 생가 곳곳을 둘러보고 다시 차량을 이용하여 만경대에 올라 그 아래로 펼쳐진 대동강과 저멀리 보이는 평양시내를 바라보니 통제된 이 땅에 남쪽사람으로서 어렵게 들어왔다는 기분에 남다른 감회가 느껴진다.                 


만경봉을 내려와 평양시내로 가는 도중에 송산식당이라는 평양 내 유명식당 중 한 곳에 들어섰는데 이곳은 아마도 북한내 한식전문식당인 듯 보였는데 당초에 계획은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는 것이었으나 얼마 전부터 옥류관을 수리하고 있다해서 이곳으로 안내를 받았다.

 

식당내부는 접대용 식당이라서 그런지 별실로 꾸며진 방은 화려하게 장식해 놓은 듯 하였고 그러한 별실내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한쪽에 설치된 바 형태의 카운터와 다른 한쪽엔 가라오케 시설물이었다. 식사는 육식과 생선 등 해산물이 주로 눈에 띄었고 각각의 음식맛은 숙소 내에서 먹는 것보단 다소 입맛에 맞았고 또한 고급스러워 보였다.

 

약간의 술과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난 뒤 20대 여성 접대원 권유에 의해 카라오케에 의한 노래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가라오케는 우리의 노래방 기계와 다른 DVD형태에 디스크에 의해 영상물이 포함된 노래 몇 곡식 들어 있는 것이었고, 노래종류는 대부분이 해방 전후에 불려진 대중가요이거나 북한내에서 불려지는 혁명가요들이 대다수를 차치하는 듯 하였다.


송산식당을 나와 평양시내를 들어서면서 길주변에 보이는 고층건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고층건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오피스용 빌딩이 아니고, 대다수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데서 금융업이나 유통업 등 이른바 제3차산업이 거의 필요치 않은 공산주의 경제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그런데 전기공급이 불안정한 이곳에서 고층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어떻게 고층을 오르내리는가 하는 의아한 생각이 문득 들어서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서 접대원에게 이러한 궁금증을 물어보니 잠시 대답을 멈칫하더니 평양엔 전기공급이 안정적이라고 답을하고 돌아서는데 아마도 그 전에도 남쪽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은 듯 하였다.
    

평양시내를 들어서 잠시만이라도 차량에서 내려서 주민들과 접촉해 보고 싶었으나 차량이 거의 없는 거리에서 우리가 탄 차량은 머뭇거리는 틈도 없이 목적지를 향하여 달리는 탓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평양거리를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간혹가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보이는 곳에 노점이 있어 아마도 이곳에는 떡같은 먹거리를 주로 파는 듯 보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평양주민들과 앞에 오토바이를 탄 평양의 교통경찰관>

 

어느 곳은 주민들이 100여미터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광경도 보였는데 아마도 대중교통인 버스를 기다리는 듯 하였고, 이곳에 버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45인승 크기의 버스가 아니라 그러한 버스의 절반정도 크기로 간혹 지나치는 버스안을 주의있게 살펴보니 많은 사람들과 갖가지 짐으로 채워져 다니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생각보다 교통사정이 좋지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많이 어려워 보이는 듯 하였다.

 

평양에서 계획적으로 세웠다는 평양의 광복동 거리는 서울로 생각하면 강남정도로 생각할 수 있었고 이곳은 아파트 평수가 30-40평대라 하니 이곳에 주로 사는 이들이 아마도 북쪽의 지체 높은 간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구체적으로 물어보기가 그래서 그냥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지나쳐 버렸다.   


평양에서 가장 큰 상징물로 여기는 150m 높이에 주체탑에 올라 평양시내와 그 앞 대동강 건너 인민대학습당, 그 앞에 펼쳐진 김일성 광장을  바라보니 다시한번 평양에 들어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안내원에 전반적인 설명을 들으며 차량이 거의 없는 평양거리를 배경으로 사진한방을 담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평양의 유적지인 모란봉과 을밀대를 아쉬움 속에 오르진 못하고 옆에서 바라보며 지나치고 다시 노대통령이 방문시 TV화면에 생생하게 나왔던 평양의 종로거리와 개선문을 지나 유턴을 하고 평양에서 가장 좋은 특급호텔인 고려호텔주변을 들어서니 이곳이 평양에선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체탑에서 바라본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 광장>

 

<평양시내 일부 - 안내원 설명으론 6.25이후에 건립된 지역이라 노후된 건물이 많다고...>

 

고려호텔내 1층에는 외국인을 위한 면세점이 있어 얘기가 고파던 나로서는 쇼핑을 하며 대체로 인물이 괜찮아 보이는 이곳 여자 판매원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여자 판매원들의 태도는 남쪽의 여느 여성들과 대화하듯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고려호텔 주변 - 평양내 가장 번화한 거리>


고려호텔을 마지막으로 평양관광이 막바지로 들어서 수박겉핥기식 관광에 아쉬움이 있었으나 그나마 짬을 내서 평양을 와봤다는 것만으로 마음을 달래며 다시 숙박지인 남포로 돌아가는 길에 남쪽에서 평범하게 사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 중 몇가지를 표현하자면


첫째가 2007년 11월 중에 있어서 남쪽 사람으로서 북쪽여행은 약 40여년전으로의 과거여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주민들이 사는 행태나 차림새 그리고 모든 사회적인 기반조건을 판단해 보건데 이것은 더 이상의 서술이 필요없는 듯 보였다.


두번째가 북쪽은 진정한 사회적 가치관이 결여되어 목표의식과 성취도가 없는 곳으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예가 아주 낮은 생산성이었다. 남쪽에서는 5명정도가 단 이틀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분량의 일을 북쪽에서는 50명 정도가 달라붙어 며칠에 걸쳐 완공을 하는 것을 보다보니 딱히 한숨만이 나올 수 밖에 없었으며 아울러 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은 바로 그들의 최고 통치자에게 인정을 받는 것으로 이것만 이뤄지면 그들사회에선 성공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정서가 북한의 슬픈 현 상황을 보게 한다.


세번째는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단지 최소한의 먹을 것만 충족된다면 현 국가 시스템에 별 불만이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으로 주민 전체가 매너리즘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회주의에 근간인 경제적으로 평등하게 사는 것과 국가가 책임을 지는 사회복지제도(주거,의료, 교육, 노후)로 인한 것인데, 사실 북한은 국가적으로 너무도 가난하기에 이러한 복지제도를 충분히 해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바깥세계와 완전히 차단되어 이러한 제도자체만 존재하고 실제로 혜택이 없는 현 상황에 대해 별 문제없이 여긴다는 데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


네번째로는 북한은 김정일이라는 최고 통치자와 그를 둘러싼 기득권 세력을 위해 주민들을 군사적 조직으로 구축한 곳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러한 판단은 북한에 일주일 이상 머물면서 그들의 방송과 신문 등을 모니터링을 하며 갖게된 판단인데 이들의 모든 시스템은 바로 상층부에게 충성하는 것으로 기반을 두고 있는 듯 보였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국가적 시스템은 너무나도 결함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각별하고 튼튼한 보안상황을 배경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여 그들 스스로도 어느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을 하지 못할 정도로 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데, 그 일예로서 북한이 외부 세계와 접하는 모든 것은 일단은 그들 사회에 있어서는 최고의 것으로 시행하여 어떠튼간에 외부인이 북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그들의 실상과는 전혀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고 그리고 실제로 남쪽에서 방문한 우리를 비롯한 외부인들은 이러한 것에 대해 철저히 눈속임 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내에 서서히 불고있는 여러가지 다른 현상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비록 제한적으로 접근한 북한 주민이였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공식적인 언행 외에 그들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각을 여러 정황을 갖고 살펴보면 우리가 의도하는 면도 갖고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알 수 있었다.


향후 10년 후에는 남북한이 어떻게 변할지는 어느 누구도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 글의 맺음도 그냥 물음표를 내며 끝내고자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 중요한 것은 남쪽이나 북쪽이나 모두가 원하는 통일은 그리 쉽게 오지는 않으리라는 나름대로 주관적인 생각을 가져본다. 이것은 남북 간에 경제적인 차이가 통일에 걸림돌이라는 것이 남쪽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남북한 주민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과 세상을 보는 정서가 너무도 크기에 그러한 차이가 통일에 대해 보다 큰 문제거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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