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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벨로 라이딩/2026년

파주시(공릉천) 일대 라이딩

by 우둥불 2026. 3. 4.

 

 

이번 라이딩 코스는 서울을 중심으로 거주지와는 반대편에 위치한 곳이므로 전철로 오가는 시간이 3~4시간이 걸리는 지역이라  라이딩 시간이 좀 빠듯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집에서 오전 9시경에 출발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라이딩 시작점인 3호선 삼송역에 도착시간이 오전 11시가 넘었습니다. 더구나 MTB도 아니고 미니벨로를 가지고 코스를 타는 상황이라 종료시간이 늦을 거라는 예상을 하고 라이딩을 시작했는데, 예상하지도 않았던 출발점부터 업힐을 시작되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라이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공릉천이라는 한강지류가 있는 곳인데, 노원구와 중랑구에 중랑천과 남양주시에 왕숙천, 또 성남지역에 탄천과 강남에 양재천 그리고 안양지역에 안양천과 마찬가지로 고양과 파주지역은 이 공릉천이라는 이 하천이 예로부터 이 지역에 젖줄역할을 한 하천입니다. 이러한 공릉천을 중심으로 이 지역에 시골길, 마을길, 옛길을 돌아보면서 이 지역에 대한 새로운 여러 정보와 상황을 알게 되는 것이 라이딩 시작함에 있어서 적잖게 조금 흥분이 되었습니다.   

 

또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과 또 라이딩을 마치고 나서의 성취감은 이렇게 낯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더욱더 그것이 가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라이딩을 마치고 이렇게 후기를 쓰고 있는 마음은 어느 때보다 흥분되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시간이 늦었던 관계로 전철에서 퇴근하는 무리들과 섞여서 전철을 타고 오느라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힘들었는데, 특히 오후 5시 30분경에 4호선 충무로역에서 내가 생각하는 퇴근시간으로는 조금 일렀던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어마어마한 인파로 퇴근하는 젊은 20-30대의 무리들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하는지 조금 의아스럽고 당황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대다수가 돈암동지역인 성신여대 입구나 미아리 그리고 수유리 지역에서 하차를 하는 무리들이어서 그 이후부터는 대체로 한가하게 거주지 동네 전철역까지 오기는 했지만, 이러한 상황을 현재의 우리 사회상과 연계하여 보는 것이 너무 무리한 생각인가 하는 의문점도 가지면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라이딩 시간 / 날씨 / 풍속 ;

 

2026년 03월 04일 수요일 오전 11시 19분 18초 - 오후 16시 38분 30초 (5시간 19분 12초)

맑음 (섭씨 8도 전후) / 북서풍 3m/s 

 

 

 

라이딩 코스 / 운행 거리 및 시간 / 평균속도 / 상승고도 ;

 

삼송역(3호선 ; 시작) - 오금천 - 당꼬고개(비포장) - 신선유교(공릉천) - 벽제역교차로 - 빈정교(벽제천) - 고양동 - 혜음령(고개) - 용미리 - 은곡교(고산천) - 장곡교 - 공릉저수지 - 오산 1 교차로 - 고창교(고산천) - 반환된 미군기지터 - 점심식사(봉일천 ; 추풍령 묵은 김치) - 공릉천 자전거길 - 갈현입구사거리 - 법흥리 - 헤이리예술마을 - 성동사거리 - 송촌교(공릉천) - 문발교차로 - 파주출판단지 - 대화천 - 대화역(3호선 ; 종료)

65.93Km / 04시간 13분 14초 ( 1시간 05분 58초 점심 및  휴식시간 별도 ) / 15.6km/h / 633m 

 

 

 

라이딩 지도 ; 확대하려면 마우스 클릭하고 확대(+)

 

GPX 지도 ;

2026-03-04_1119 파주시(공릉천 주변) 일대 라이딩.gpx
0.97MB

 

 

 

삼송동에서 바라보이는 북한산 전경

 

상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공릉천과 상산

 

고양시일대 시골길

 

벽제천을 따라

 

혜음령을 넘으면서

 

 

혜음령(惠陰嶺)은 고양군의 북쪽에 위치하여 파주군 광탄면과 접경하고 있습니다. 혜음령은 해발 164m밖에 안 되는 낮은 고개지만, 고개 아래의 양쪽이 모두 낮은 평지여서 고갯마루가 의외로 높아 보이는 곳입니다.

혜음령은 예로부터 고개 위에 그늘이 져서 쉬기에 적합하므로 '그늘의 은혜를 입는다.' 하여 혜음(惠陰)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하는데, 과거에 중국 사신들이 한양으로 가다가 산 아래 고양 벽제관에 이르기 전 고단한 몸을 잠시 쉬어 가는 고개라 해서 ‘쉬엄령 고개’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원병으로 참전한 명나라 이여송의 군대가 혜음령 일대에 진을 치고 일본군과 큰 전투를 벌였던 사실만 봐도 이 혜음령은 예로부터 전략적인 요충지로 인식되어 오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파주일대에서 가장 빠른 길은 한강둑을 타고 달리는 자유로입니다. 과거에는 동쪽의 산지를 따라 길이 나 있었는데, 현대로 오면 올수록 길이 서쪽으로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발달한 도심지도 달라지는 것을 보면 확실히 경향성이 있어 보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벽제관이 있던 고양리(현재의 고양동) 일대가 고양군의 군소재지였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도로의 중간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광탄, 주내(파주읍)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옛날 의주길은 임진강가의 화석정으로 이어집니다.

현재에서는 큰 개천이나 강을 따라 길을 내는 것이 어려움이 없지만, 조선시대 이전에는 언제 넘칠지 모르는 하천 주변 평지에 길을 내는 것보다 좀 힘들더라도 고개 넘어 고개가 있는 쪽에 길을 내는 것이 훨씬 이로웠을 것입니다.

 

다음 글은 서울신문에 서동철 논설위원이 2015년 1월에 기고한 혜음령에 관한 글입니다. 

혜음령은 경기 고양시 고양동과 파주시 광탄면을 잇는 고갯길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의주를 잇는 의주대로의 일부였다. 혜음령은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임진각으로 달리다 보면 나타나는 벽제에서 의정부 쪽으로 길을 갈아탄 뒤 고양향교가 있는 고양동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만날 수 있다. 고개를 넘으면 서울시립 용미리공원묘원이다. 의주대로는 지금 고양시와 파주시의 협력으로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정비되어 있다. 삼송동에서 임진강과 만나는 임진나루까지 걸어서 탐방할 수 있다.

조선 왕조는 개성에서 개창해 한양으로 천도했으니 혜음령은 ‘두 서울을 잇는 고개’였다. 고려 왕조도 지금의 서울인 남경(南京)을 새로운 수도로 삼을 것을 고민했다. 고려가 혜음령 일대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는 용미4리의 혜음원(惠陰院) 터에서도 드러난다. 혜음원은 개성과 남경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1122년(고려 예종 17) 세운 국립 숙박시설이다. 왕의 행차를 위한 별원(別院)과 사찰도 있었다. 발굴 조사에서는 ‘혜음원’이라고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출토됐고, 27개에 이르는 건물터, 연못터, 배수로 등 대규모 유구가 확인됐다.

고려시대 혜음원과 이웃한 장지산 기슭에 높이 17.4m의 용미리석불입상이 세워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거대한 석불은 의주대로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국가의 위세를 보여 주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먼 길에 나선 사람들도 두 분 부처의 자비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혜음령은 중요한 간선도로였지만 도적이 출몰하는 위험한 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세기가 목전이었던 1891년(고종 28)에도 ‘도적의 무리가 자주 출몰해 백성이 안심하고 터 잡을 수 없으니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는 장계(狀啓)가 경기감사로부터 올라오기도 했다. 값나가는 물건이 아무래도 많았을 여행자는 더욱 도적의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서울과 의주를 잇는 길은 일제강점기 벽제에서 금촌과 문산을 거치도록 바뀌었다. 이후 이 길을 넓힌 것이 통일로, 조선시대에는 완전치 않았을 한강과 임진강의 강둑을 이은 길이 자유로다. 과거 혜음령처럼 높은 고개를 지나는 길을 이용한 것은 하천 때문이다. 광탄(廣灘)이라는 땅 이름부터가 ‘넓은 여울’이라는 뜻이다. 양주에서 흘러내려온 두 개의 물길이 합류해 넓어진 문산천은 난코스였다. 의주대로가 임진나루로 이어지는 것도 강폭이 좁고 수심이 얕기 때문이다.

산과 하천은 이제 터널과 교량으로 극복한다. 통일로와 자유로도 수많은 다리로 이어졌다. 혜음령에서도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745m짜리 터널이 올해 완공되면 희미해진 옛 의주대로의 존재도 다시 부각될 것이다. 주변에 ‘혜음원 박물관’이나 ‘의주대로 박물관’이라도 세운다면 그 효과는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


현재에는 일산신도시, 행신지구, 교하신도시 등을 살펴보면 모두 서쪽의 경의선라인이 지나가는 넓은 평지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실 이건 경의선이라는 철도의 공이라기 보단 거대한 신도시를 만들 수 있는 '터'의 문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옛날 길인 의주길을 따라 있는 마을들은 고양동을 제외하곤 모두 활력을 잃고 쇠락했습니다. 광탄, 주내(파주읍), 연풍리 등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중심에서 멀어져 완전히 외딴 동네가 되어버린 동네가 되었습니다. 터가 지나치게 좁아 일정이상 도시가 커지는 것 자체가 좀 무리가 있긴 했지만. 전근대와 현대의 도로 그리고 그에 따른 도시의 흥망은 꽤 흥미롭게 바로 보게 됩니다. 

 

 

임진왜란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를 하나인 '벽제관 전투'는 조명연합군이 파죽지세로 일본군을 격파하면서 내려오다가 벽제관인근에서 일본군에게 패하면서 소강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한 벽제관 전투도 이곳 의주길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 당시 전투 상황지도

 

 

벽제관이 워낙 유명해서 벽제관전투라고 이름이 붙긴 했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여석현(숫돌고개) 전투 또는 신원리전투 라고하는 것이 맞는다고 합니다. 현재 고양시 신원마을이라고 아파트촌이 형성된 곳입니다. 신원마을에서 삼송리 가는 길에 고개가 있습니다. 거기서 조명 연합군이 일본군에게 패한 곳입니다.

 

 

 

간간히 비포장 도로를 지나야 합니다.

 

고산천을 따라서

 

공릉저수지

 

공릉저수지를 따라 산책로와 차로

 

아는 사람만 다니는 길

 

용미리 미군기지 반환터 - 현재는 체육시설 등이 들어섰음

 

공릉천 자전거길

 

헤이리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