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동해안 겨울 여행
2024년 1월에 예정에 없던 동해안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젊은 시절에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많이 돌아다녀서 인지 지금에 와서는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호감도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타 지역의 여행은 별 감흥이 오지 않아서 최근 들어서는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 바다건너나 혹은 숙박을 하면서까지 나가질 않는 상태였는데, 그러다 보니 퇴직 후에 집안에서 가족들과 수년간을 얼굴을 맞대고 살다보니 가족들이 오히려 나가길 강력히 권고를 하고, 또 아내는 같이 있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큰 아들 녀석이 여행경비까지 챙겨주어 떠밀리다시피 하여 2박 3일 일정으로 오랜만에 동해안 쪽의 속초와 강릉주변을 홀로 다녀왔습니다.
마냥 즐겁기만 한 여행은 아니어서 그런지 약간은 허무한 마음을 가지고 운전대를 잡고 느긋하게 질주를 하였지만, 막상 날 좋은 겨울날에 동해안 쪽 도로를 따라가는 기분은 기대이상으로 호젓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전 10시경에 집에서 출발을 하여 속초에 들어서니 오후 1시경으로 점심시간을 막 지난 시점이라 속초에 들어서자마자 속초에서 맛집이라고 소문이 난 백촌막국수(고성군 토성면)부터 들러서 점심식사를 시작으로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백촌 막국수
청간정
청간정(淸澗亭)은 창건연대나 창건자가 기록에 없어 알 수 없지만, 성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이 동해바다와 만나는 자리인 기암절벽 위에 팔각지붕의 중층누정으로 아담하게 세워져 있어 관동팔경 중 수일경으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조선조 중종 15년(1502)에 간성군수 최청이 중수한 기록으로 보아 정자의 건립은 그 이전으로 추측되며, 1884년 갑신정변에 소실되었다가 1928년 재건하였고, 1980년 정자를 완전 해체한 다음에 다시 복원을 하였다 합니다.
청간정의 현판은 이조 현종 때 우암 송시열이 좌상으로 재직 시 이곳에 들러 친필로 썼었고, 그 후 1953년 고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쓴 현판이 현재까지 걸려 있습니다.
아야진 해변
고성군 남단에 위치한 아야진 마을은 마을명이 구암리(龜岩里)라 불러왔는데, 아야진 등대가 위치한 바위가 거북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 유래가 되었다 하며, 아야진에서 교암리로 넘어가는 산이 야(也)자 처럼 생겼다고 하여 우리라는 아(我)를 붙여서 아야진(我也津)으로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영금정
지금은 정자만 남아있지만, 원래는 영금정이라는 것이 정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지형에 넓게 깔린 바위들에 파도가 부딪칠 때 거문고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속초항 건설을 위해 이 일대 지형을 파괴하면서 거문고 소리를 잃었다고 하며, 현재는 연금정 옆으로 50여 미터 바다 쪽으로 다리를 만들어 그 끝에 해돋이 정자를 별도로 만들어 놓아 해돋이 명소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화진포
화진포는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에 위치한 호수로 예전에는 바다였던 곳이 시간이 흐르며 바다와 호수로 격리되면서 형성되었으며, 담수와 해수가 섞인 석호이며, 화진포의 호수 둘레는 15km를 넘는다고 합니다.
화진포는 삼팔선 북쪽의 지역으로 6.25 전쟁 이전에는 북한의 영토였습니다. 화진포가 북한 땅이던 시절에는 김일성이 가족과 함께 화진포를 자주 찾았다고 전해지고, 지금도 남아있는 화진포의 성은 김일성이 2년 동안 오고 가며 머물렀다는 별장입니다.
6.25 전쟁 이후에 고성군 지역이 우리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과 그의 가신이었던 이기붕도 이곳에서 별장을 정하여 휴가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10여 년 전에 대표적인 한류 드라마인 가을동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화진포는 여행지로서 좋은 풍광을 보여주면서, 뒤에는 호수와 함께 앞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진 해수욕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저 개인적으로도 다른 동해안 해변가에 비하여 가장 느낌이 좋다는 기분을 갖게 하는 해변가였습니다.
왕곡마을
고려 말 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명인 양근함씨(楊根咸氏)의 함부열(咸傅烈)이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인근 간성 지역으로 낙향하였고, 그 후로 그의 손자인 함영근이 이곳 왕곡마을에 정착하면서 마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마을은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그 이후로 조선후기에 걸쳐 지어진 기와집 및 초가집 50여 채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마을에는 양근함씨 및 강릉김씨(江陵金氏)가 주된 성씨로 거주하고 있으며, 2000년 1월 7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왕곡마을의 지명 유래는 다섯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계곡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마을이 자리한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五峰里)는 오음산(五音山)을 주산으로, 두백산(頭伯山), 공모산(拱帽山), 순방산(脣防山), 제공산(濟孔山), 호근산(湖近山)의 5개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에서 지어진 명칭이라 합니다.
하조대 해변
휴휴암, 남애항
경포해변
삼양목장의 겨울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