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선암사 탐방
송광사가 한국 불교계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근본 사찰이라면, 선암사는 조계종 다음으로 큰 교세를 가진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여기서 한국불교에 대하여 참고해야 할 사항은 일제시대 때 일제가 한국불교 말살정책을 강행하는 바람에 한국불교계는 결혼을 하고 가족을 데리고 종교생활을 하는 이른바 대처승이 급증을 하였다. 그러다가 해방 후에 이승만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처승을 절에서 물러나게 하는 이른바 불교 정화 유시를 내린다. 이로인하여 독신으로 종교생활을 하던 비구승과 대처승과의 갈등이 극에 다다르고, 결국 1962년에 비구와 대처를 통합한다는 형식으로 조계종단을 새롭게 출범을 시켰으나, 결과적으로는 대처승들이 전통사찰에서 물러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대처승들이 1970년에 태고 보우국가를 종조로 하여 태고종으로 등록을 하고 선암사를 태고종의 총림으로 발족을 시키면서 불교계는 비구승의 조계종과 대처승의 태고종으로 나뉘게 되었다.
선암사는 통일신라 말기 도선이 호남을 비보하는 3대사찰인 광양 백계산의 운암사, 영암 월출산의 용암사, 순천 조계산의 선암사의 하나로 창건되었다는 설과 백제 성왕7년에 아도화상이 세운 비로암을 통일신라 경덕왕 원년에 도선이 재건하였다는 두가지 창건 설화가 있다.
선암사로 가는 길은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을 대략 30여분 걸어올라가는데, 포장이 안된 길이라서 마음이 한결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선암사의 대웅전은 순조 25년에 중창되었다고 하는데, 단아하면서 정중함이 우러나온다.
선암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소이다. 이른바 뒤깐(화장실)인데, 예상하는데로 재래식화장실로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이 여성용이고 왼쪽이 남성용이다. 그런데 용변을 보는 칸막이는 위쪽 천장이 없고 칸막이도 1미터 50센티정도의 높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아래쪽에 현대식 화장실이 있어 거의 사용이 없는 것 같다. 화장실 밑간에도 오래 전부터 있었던 마른 용변들이 바닥에 조금 보이는 듯 했다.
순천 선암사라고 하면 당장 떠오르는 사진 장면이 바로 승선교이다.
우리나라에서 남아있는 무지개 다리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다는 평을 듣는 다리인 선암사 승선교인데, 다리 아래 원형 안쪽으로 강선루와 함께 한 프레임에 담는 것이 잘 알려진 사진 중에 하나이다.
승선교 아래쪽에 위치한 또 하나의 작은 무지개 다리 위에서 바라본 승선교
강선루를 지나 선암사 쪽으로 대략 500미터 올라가면 타원형의 연못을 만나는데, 못 가운데에는 알 모양의 섬이 있는 특이한 모습으로 바로 삼인당(三印塘)이다. 여기서 삼인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이라는 삼법인을 말하며, 가운데 알 모양의 섬은 자각자리(自覺自利)이고, 긴 타원형의 연못은 각타이타(覺他利他)를 의미한다.
삼인당에서 바라본 강선루
선암사의 일주문은 배흘림 기둥 두 개가 화려한 공포를 인 모습의 맞배지붕집이다. 배흘림 기둥은 낮고 작은 담으로 이어져 있다.
앞쪽 현판에는 '조계산 선암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주문 뒤편에 현판은 전서체로 '고청량산해천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밖의 선암사 요사체들....
대웅전 뒤쪽으로 저 멀리 불조전이 보인다.
창파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