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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과 아랍인은 같은 성서의 민족, 왜 원수가 되었나

우둥불 2007. 9. 20. 09:33

이 글은 "이슬람 문명 올바로 이해가기"의 이희수/이원삼 외 지음에서 발췌한 글임을 알립니다.

 

 

유대인과 아랍인은 같은 성서의 민족, 왜 원수가 되었나...

 


아랍인과 유대인은 같은 성서의 백성이다. 함께 유일신을 믿고 척박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제한된 생태계를 공유하며 유목과 목축을 주업으로 살아온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민족이다.

 

구약성서와 코란에서 두 민족은 모두 아브라함을 공통조상으로 받들고 있다.

아브라함이 자식이 없어 몸종인 하갈과 혼인하여 이스마일을 낳고 다시 본부인인 사라도 태기가 있어 자식을 낳으니 그가 이삭이다. 그 후 이삭은 유대민족의 조상으로 후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켰고, 이스마일은 아랍족의 조상으로 그 가문에서 마호메트를 탄생시켰다.

 

이런 역사적 친근 관계를 가진 두 민족이 현재 싸우게 된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그 무대는 바로 유대 민족을 박해했던 유럽의 기독교이다.  


기원전 10세기경에 유대 민족은 왕국을 이루며 살고 있다가 기원전 7세기에 앗시리아에 빼앗겼다. 그러나 이후 다시 유대민족은 국가를 세웠지만 1세기에 다시 로마에게 멸망을 하였다. 이후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하면서 건국을 할 때까지 2천년간 유대 민족은 국가없는 유랑생활을 해왔는데, 그 처절한 유랑의 무대는 바로 유럽이었다. 

 

313년 기독교가 유럽에서 공인된 이래, 적어도 16세기까지 유대인은 유럽에서 악마와 동일시 되었다. 이것은 유럽의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 유대 민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저주받은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16세기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있은 후, 유대인은 악마의 지위에서는 탈피는 하였으나 유럽인의 반 유대감정은 너무나 뿌리깊어서 16세기 종교개혁의 선봉자였던 마틴 루터조차도 그의 저서 "악마론"의 서문에서 '악마를 제외하고 가장 흉측하고 광포한 우리의 적은 유대인이다'라고 서슴치 않고 단언할 정도였다.

 

이러한 정서는 20세기 초까지 유럽인에게 이어져 내려 왔다.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1880년 러시아 황제테러사건과 관련된 유대인 학살, 추방을 위해 비밀리 제정되었던 1881년 5월법, 1894년 프랑스 주재 독일대사관에서 일어난 프랑스 고급 군사시밀 유출사건을 유대인 장교에게 덮어씌었던 일, 그리고 20세기 들어서 인류 최대의 비극인 히틀러의 유대인 몰살 정책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은 유대인이 국가를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는데, 당시 팔레스타인을 점유하고 있던 오스만 터키 제국이 독일편에 가담하여 영국과 대치하며 영국의 생명줄인 스에즈 운하를 장악하며 영국을 위협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은 당시 오스만 터키제국의 식민지로 있었던 아랍을 독립국가 보장을 미끼로 전쟁에 끌어 들였다. 이때가 바로 그 유명한 아라비아 로렌스 대령이 민병대를 조직하여 오스만 터키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남부 전선에서 완승을 거둔 일이었다.

 

그런데 영국은 중부 전선에서 독일을 궤멸시키기위해 또다시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를 미끼로 전쟁에 끌여 들이게 되는데, 이것이 1917년 '발포오 선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쟁중인 1916년에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시리아와 쿠웨이트를 연결해서 북쪽은 프랑스가 남쪽은 영국이 갖는다는 '사이크스-피코' 비밀협정을 맺었던 것이었다.

 

이처럼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두고 아랍인에게는 아랍국의 독립을, 유대인에게는 유대 국가 창설을, 프랑스와는 영토분할이라는 3중의 모순된 비밀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 날 중동전쟁의 불씨를 지핀 근원적인 배경이 된 것이다. 서방의 강대국인 이들이 저질러 놓은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영토분할 구상으로 지금 두 민족은 역사적으로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엄청난 희생과 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인의 당사자인 영국과 프랑스는 마치 평화의 화신임을 가장하며 인류의 공존과 평화를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이 유럽에서 박해를 받던 2000년 동안 주로 아랍인이 거주를 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95%의 아랍인과 5%의 유대인이 함께 평화롭게 생존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난 후, 유럽의 수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서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은 주로 요단강 서안과 오아시스가 있는 일부 지역만 가능한데 이 지역에 인구가 두 배만 늘어도 오아시스가 파괴가 되어 생활이 여러모로 힘들게 되었지만, 유대인은 이 지역으로 원래 거주민의 10배이상이 이동을 하였다. 이렇게 되자 살기가 어려워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인근의 요르단, 레바논, 리비아쪽으로 쫒겨났다. 이들이 바로 팔레스타인 난민이다.  

 

1948년 유대인은 미국의 후원아래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포하였다. 그러자 이집트가 쫒겨난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대신하여 아랍민족의 명분으로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1차 중동전쟁은 이집트의 완패로 끝났고 1956년 이집트의 낫세르 대통령이 집권하여 다시 아랍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2차 중동전쟁을 일으켰지만 또 무참한 패배를 한다. 그 후 1967년 '6일 전쟁'으로 알려진 3차 중동전쟁이 스에즈 운하 분쟁을 계기로 발발하였지만 또 다시 아랍권의 패배와 더불어 오늘날 중동 영토전쟁의 불씨가 되는 시나이 반도, 지중해 쪽 가자지구, 요르단과의 경계인 요단강 서안, 시리아의 베카 계곡과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이 점령해 버렸다.

 

1974년 중동전쟁때는 석유가 무기화되면서 제1차 석유위기를 촉발하기도 하였다. 이때 우리나라도 친미국-친이스라엘 국가로 분류되어 원유 수급에 막대한 차질을 빚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랍국가가 반미를 지향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나 서방세계는 오히려 여러가지로 압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50여년 동안 유엔 결의안을 전혀 준수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아무 제재를 받지 않고, 아랍 국가의 조그만 반발 행동조차 서방국가는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구에 의해 유엔과는 전혀 무관하게 무력, 무역봉쇄, 경제재제 등의 조치를 취한다. 그러니 아랍 쪽에서는 미국 등 서방국가에 대해 반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랍민족의 극단적 반발이나 테러, 폭력으로 나타나는 이슬람 원리주의는 이슬람 세계에서 5%미만이라 한다. 절대 다수의 이슬람 세계는 서방과의 공존과 협력을 통해서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하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그들의 응어리와 분노를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어루만져 주어야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다. 서방의 시각으로 테러나 일삼는 민족이라고 생각을 갖고 있으면 결코 아랍인으로서는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아랍의 적지않은 국가들이 6.25는 북침전쟁으로 배우고 있고 북한은 아주 절제된 체제하에 국민들이 빈부 격차없이 균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반면, 남한은 세계 최대의 빈부 격차는 물론 사회적 모순 덩어리이며 미국이 만들어 놓은 제국주의의 희생 국가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하루빨리 풀어야 할 아랍민족과의 큰 과제라 생각된다.

 

아무튼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끝나지 않는 전쟁에 해결책은 결국 1967년에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를 아랍측에 반환함과 동시에  그곳 일부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당사자가 모두 과거의 불행한 대립을 청산하고 현실을 인정하는 공동운명체적인 틀을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호 실체 인정 - 외교관계 수립 -  상호 불가침 선언 -  점령지 반환과 비무장화 -  일정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건설의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완전 독립은 동 예루살렘의 관할권 문제,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내에 유대인 정착촌 철거문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이스라엘 귀환 등과 같은 문제들이 있기에 양쪽의 강경세력들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전쟁을 치르며 세월을 보낼 순 없기에 빠른 시간내에 서로간의 양보를 통해 평화협정 체결을 치루는 것이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