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가정교육 - 평생의 가르침
조선의 가문이나 가정의 지위는 그 집안에서 인격이나 재능이 뛰어나 명성을 얻은 가족 중의 한 사람이 고위 관료가 되었을 때, 그 개인의 경력과 능력을 중심으로 인물을 평가하여 추앙하는 가학(家學)사상을 기반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한 가문의 가학(家學)은 가정의 풍조와 예로부터 살아온 선조의 유풍을 통하여 나타나는데, 다시 말해서 조상의 뒤를 이은 혈통을 통하여 후손의 성격이나 재능이 계승된다는 발상입니다. 이러한 가학은 가계(家系)나 가격(家格)을 탐구하는 족보학(族譜學)의 발달로 이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전통적인 가정교육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서 볼 수 있듯이, 가족 구성원 사이의 친밀과 화합을 강조하고, 궁핍한 친척을 위한 도움을 권장하는 등 삶에 있어서 실제 내용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크게 보면 혼란한 세상에서 가정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처세훈이 핵심이고, 작게 보면 각각의 가족 단위인 가정에서 자손이 번영하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퇴계 이황이나 다산 정약용 등 대학자들의 편지를 비롯한 다양하게 자녀를 훈계하는 방식에서 가정교육의 의의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교육의 가치는 가정의 조직을 유지하고 생업을 수행하며 제사를 중심으로 의례를 거행하는 것인데, 이를 수행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가사(家事)가 필요하였고, 그러한 가사는 가정이 지향하는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총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친족의 화합을 도모하고 자손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며, 사업을 번영시키고, 재산을 관리하며, 가문의 의례를 봉행하는 일 등 다양한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은 자신의 본분에 맞는 일을 익히고 실제로 이행해야 하는데, 특히 집안의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학행(學行)을 권장하고, 조상을 알고 제사를 받들며, 족보를 인지하면서 보학을 발전시키고, 친족 간 화목을 도모하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가사 가운데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일은 가정의 화합이었으며, 조선에서의 전통적인 가정교육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가정에서 배우는 것
조선시대의 가정에서의 자식 교육은 유교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던 아동 청소년을 위한 교육서인 소학의 가르침에 따라 진행되었는데, 아이가 태어나 수유기를 거쳐 영아 때는 발화(發話)와 배변(排便) 훈련을 하였고, 유아기에는 문자와 간단한 생활규범을 획득했으며, 아동기에는 성별의 역할과 기본예절을 학습하였습니다. 아동기 이후의 14~15세 청소년기에는 오늘날 성년식(成年式)에 해당하는 관례(冠禮)를 올리고, 15세 무렵 이후에는 혼인(婚姻)을 하였습니다.
특히 집안의 의례가 엄격한 양반가 자손들은 연령과 성별에 따라 성장하는 장소를 달리하기도 하였는데, 수유기인 1~2세 무렵에는 모친과 안채에 머물며 모친이나 유모(乳母)의 젖을 먹었고, 3세 무렵이 되면 이유기를 거치면서 간단한 언어 학습과 배변훈련을 하는 시기가 되면서 조모가 양육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는 할머니 무릎에서 가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른바 무릎교육을 통하여 성장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5~6세 무렵에 사물을 구별하고 문자에 흥미를 가지는 연령이 되면, 남아는 사랑채에 나가 부친이나 조부와 같이 기거하며 문자 교육을 포함한 선비로서의 삶의 자세를 익혔고, 여아의 경우는 조모의 방으로 거처를 옮기었는데, 이 시기에는 대체로 친모에게 동생이 태어나 성장하는 아이를 양육하기 힘든 시기일 수도 있었기에, 여아는 안채의 주인인 할머니와 기거를 하며 글을 배우며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후로 흔히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남녀 구별을 나타내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의 시기가 되면, 자식 교육은 더욱 엄격해졌습니다. 남아는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조부에게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초지식과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지식과 자질 그리고 역할에 관하여 교육을 받았고, 여아는 내훈(內訓)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성교육 과정에 의거하여 집안일의 기본 기술을 익히고, 7세 이후에는 효경과 논어, 계녀서 등을 통달하게 됩니다. 15세 전후에 이르면 성인식에 해당되는 관례를 치르고 혼인을 하는데, 만약 혼인 전에 부모상을 당한 경우는 3년상을 치러야 하는 만큼 관례나 혼례가 3년씩 늦어지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남성의 경우는 사대부로서 행세할 수 있는 학문과 예의범절 등,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으며, 여성은 안채에서 남성에 버금가는 교양지식은 물론 상 차리기, 다림질, 바느질 등을 익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전통적인 가정교육
조선시대에서 각 가정의 자식 교육 방법은 여러 가지로 행하여졌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아동 청소년의 학습 원리를 충분히 고려하여 설정하였는데, 그 첫째는 견문(見聞)입니다. 문자 그대로 직접 보고 듣는 일로 모범적인 대상을 모방하여 깨달은 정보를 상황에 따라 인출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가족 내 훌륭한 인물의 행동을 보고 들음으로써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일종의 자기 학습법이었습니다. 둘째로는 아주 엄격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방법인데, 퇴계 이황은 어릴 때부터 부친을 여의었기에 어머니의 교육이 매우 엄격하였는데, 그의 모친이 이황을 가르침에 있어서 과부가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며 세상 사람들이 의심을 하니 너는 남들보다 100배는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라고 했듯이 매우 엄격한 교육방법을 활용하였습니다. 교육심리학적인 목적에서 부모가 자식을 엄하게 교육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부여하는데, 부모가 자식을 향하는 감정은 기본적으로 자애(慈愛)이기 때문에 부모의 엄한 교육은 자애를 역설적으로 달리하는 표현이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외에도 부모가 직접 자식 교육을 하지 않고 세대를 하나 건너뛰는 격대(隔代)와 다른 친족이나 외부의 선생을 모셔서 자녀를 바꾸어 교육하는 역자(易子), 타고난 재질을 고려하는 인재시교(因才施敎),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 포상을 통한 동기 부여 등의 방법으로 교육을 하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의 고민
현대사회에서는 시대가 바뀌어 가정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만큼, 전통 가정교육은 상당한 정도의 해체를 겪고 있는 상태인데, 이러한 시대에서의 전통 교육은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응용하여 전통 가정교육이 지닌 원리나 방법을 현대적 차원에서 변환을 고민해야 합니다. 전통이란 시대정신을 고려한 새로운 시각을 부여할 때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대안의 가능성이 존재하면서 오래된 미래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인데, 다시 표현하면 군주제 시대에 형성된 전통 가정교육을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신중하면서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과거에 우리 조상들의 강력한 전통이었다 하여 무조건적인 가치로서 수용을 하거나 현대적인 의미로서 지닐 수 있는 가치로서 이상적이거나 환상적으로 수용을 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경계를 해야 하며, 보다 냉철하게 판단하여 현재를 사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전통적인 가정교육 방법이 어떻게 해야 우리에게 건강한 삶의 양식을 줄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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