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부부는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여필종부(女弼從夫)와 같은 상황에서 부인은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자기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일 것이라고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서로가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했음을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퇴계 이황이 손자 안도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보면 부부는 인륜의 시작이요 만복의 근원이라 하면서 부부는 지극히 친근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지극히 바르고 조심해야 한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 시작되는데, 일부 세상사람들은 부부가 가깝게만 지낼려 하다가 예를 갖추어 공경해야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결국엔 서로가 업신거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표현을 합니다. 다시 얘기하면 부부는 서로가 손님처럼 공경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마구 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래서 집안이 바르게 가려면 마땅히 부부사이가 시작점이 되어 예를 갖추고 조심스럽게 지내야 한다고 쓰여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부부의 대화는 서로가 존칭을 사용하며 예의를 갖추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당시에 언어생활을 반영한 한글편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 문장이 끝나는 부분에는 반드시 '~하소' '~하네' '상백(上白 ; 아내에게 올립니다.)' 같은 경어체를 사용하여 아내에게 예의를 갖추는 언어를 구사하였음을 알 수 있고, 추사 김정희도 아내보다 두 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극존칭을 쓰며 예의를 갖추었다 합니다.
또한 조선시대 부부사이에 배려관계의 이상인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 후기 선비였던 윤광연은 명문가의 후예였으나 경제적으로 곤궁하여 서울 남대문 밖의 약현에 자리를 잡고 학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아내 강정일당은 삯바느질을 하며 조금씩 생활의 안정을 찾아 갔는데, 이때 아내 정일당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남편의 어깨너머로 글을 조금씩 배워서 결국엔 여러 경전에 두루 관통하였고 고금의 정치와 인물에 관해 통달하였다 합니다. 윤광연을 그러한 아내에게서 학문은 물론 공적인 일에 일상생활까지 모든 것을 조언을 받았기 때문에 아내를 스승으로 여기며 평생 살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부부사이는 서로 배려하며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며 살아야 함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현대의 부부 사이에서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고 유효한 가치가 되지 않는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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