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왜 인간은 매일 먹어야 하며, 병마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늙어 죽어야 하는가?
2천6백여 년 전, 인도의 한 왕국에서 태어난 싯다르타 고마타라는 왕자는 곧 왕위를 물려받을 신분으로
좋은 음식, 옷, 주변에 좋은 환경들에 둘러쌓여 있었으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위의 첫글에서 표현했듯이 그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끝 모를 의문
즉, 인간이란 결국 고통을 겪다 늙고 죽어야만 하는 결론에 허무감을 갖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홀연히 왕궁을 떠나 머리를 깍고 수행의 길을 떠나 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오로지 '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만 안고 오로지 수행에 열중하였다.
그렇게 6년여의 시간을 지낸 어느 날 아침, 보리수 나무아래서 동쪽 하늘에 떠 오른 별을 보고 홀연히 깨닫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가 무한대의 시공에 놓여 있다는 것과 우주와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는 삶과 죽음이 따로 없으며, 오고 가는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른바 석가모니 부처님이 무명(無名)의 눈을 떠서 마침내 본성(本性)을 발견 한 것이었다.
무지(無知)가 나타날 때 '마음'이 나타나고, 마음이 나타나면 욕망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그 욕망에서 삶과 죽음, 오고 감, 행복과 불행 등이 생겨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부처님은 인간의 끝없는 윤회의 사슬을 어떻게 끊을 수 있는 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중생들이 세세생생(世世生生) 거듭되는 삶과 죽음이라는 덫으로 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것
즉, 바른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은 것이었다. 우리는 이를 일컬어 열반(涅盤)이라 부른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눈에는 무지 속에서 욕망과 분노를 쫒으며
태어나서 병들고 늙고 죽으며 끊임없이 방황하는 중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고통의 바다에 허우적거리면서도 그것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당연한 듯 여기며 살고 있었다.
여기서 부처님은 ' 내가 깨달은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하고 깊이 생각을 하였다.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포기하고 영원한 안식과 기쁨의 상태인 열반의 상태에 그냥 머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처님은 고해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들에 대한 깊은 자비심을 가지고 있었다.
무한한 평화와 기쁨의 상태인 열반(nirvana)의 세계를 떠나
시끄럽고 더럽고 경쟁과 투쟁이 가득한 인간의 세상으로 다시 나온 것이었다.
부처님은 속세의 왕위를 버렸듯이 다시한번 안락한 열반의 상태를 포기하고 세상에 나왔다.
이것은 개인의 깨달음에 집착하지 않은 행동으로 바로 '대자대비심(大慈大悲心)이다. 즉 위대한 사랑인 것이다.
이 거룩한 깨달음의 사랑이 곧 불교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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