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체를 가만히 따져보면 모두가 어떤 까닭에 걸려 있음을 알게 된다.
혹시나 그 까닭을 모르더라도 무의식 속에 그것이 담겨 있어서 항상 인연과 인과의 법과 정(情)에 걸리게 되고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까닭없이 하는 행위도 비정상이니 까닭 있음과 없음의 양쪽에 매여 꼼짝달짝 못하게 된다.
불법은 이 까닭을 근원적으로 없애주어 자유로운 생각과 자연스러운 행(行)을 가능하게 해준다.
까닭이 있고 없음이 문제가 아니라 까닭을 찾는 습성이 진정한 문제이다.
까닭을 찾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마음이 머물 구실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이른바 내가 집착하게 되도록 만드는 강력접착제인 것이다.
일만가지 이유는 곧 일만가지 번뇌망상인지라,
성인(聖人)의 가르침에는 까닭을 달지 않고, 무조건 마음과 행(行)으로 따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까닭을 붙이면 자칫 성인의 가르침이 아니라 자기의 주관적인 견해가 되어 버리니 곧 알음알이다.
해탈하고 나면 까닭은 사라지고 방편만 남는다.
泯 基 所 以 不 可 方 比
민 기 소 이 불 가 방 비
그 까닭을 없이하여 견주어 비할 바가 없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