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동장대에서 칼바위 능선을 따라 동남쪽으로 뻗은 가지산이 다시 갈라져 화계사의 주봉을 이루고, 수유리 고개를 지나 번동의 서울 드림랜드가 있는 오패산을 이룬다. 여기서 다시 동남쭉으로 뻗은 구릉 줄기는 장위동 고개를 넘어 해발 140m의 천장산(天藏山)을 이룬다. 그 서남쪽 가지산은 회묘터(懷墓址:경희대 의료원 자리)를 서쪽으로 감싸돌아 다시 안화현(安禾峴:회기동 고개)를 넘어 청량사의 뒷산 봉우리인 바리봉을 이루며 다시 동남쪽으로 떡전고개(餠店峙)를 넘어 배봉(拜峯:110m)을 만들고 중량천과 청계천을 만나 산줄기는 끝이 난다. 이렇게 북한산에서 뻗어 서울의 동쪽 외곽을 에워싼 한가닥의 산줄기 중간에 자리한 회기동과 청량리동에 걸쳐 천장산이 있다.
‘천장산 연화사 삼성각의 상량문’에 따르면 “진여불보(眞如佛寶)의 청정법신(淸淨法身)이 시방삼세에 두루 하지만 드러나 보이지 않으므로 가람의 뒷산을 ‘천장산’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불교사찰의 입지유형 가운데 가장 빼어난 명당터로서 “하늘이 숨겨놓은 곳”이라는 산이름을 얻었다.
일찍이 고려조에는 지리도참설을 크게 신봉한 예종이 오늘날의 서울인 남경(南京)에 친히 행차, 당시 문벌가문 출신의 거사 이자현(李慈賢)을 불러 삼각산 가지산인 천장산의 천장사에 머물게 하고 욕심없는 마음을 가르침받았다. 또한 조선조 초기부터 왕실의 능터로 주목받았으며 이와 더불어 능(陵)의 원찰을 자리잡게 했다.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尹)씨의 묘가 이 천장산을 주산으로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았으며, 뒷날 연산군이 회릉(懷陵)으로 고쳐 왕릉 규모를 갖추기도 하였다. 아울러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쫓겨난 연산군의 비 신(愼)씨의 묘역도 한때 회묘 경내에 마련한 적이 있다. 그 부근에 연화사(蓮花寺)를 원찰로 했으며 경종(景宗)의 의릉(懿陵)을 마련하면서 왕릉의 조포사로서의 기능을 했다. 때문에 천장산 남쪽 기슭의 청량리, 회기동 등의 땅이름을 낳게 한 계기가 된다. 그 뒤 조선조 말기에는 고종의 계비인 엄비(嚴 )의 영휘원, 영왕(英王)의 왕세자 진(晋)의 숭인원 등이 자리하여 조선조 왕실의 가족묘가 자리잡기도 하였다.
<의릉>
또 오늘날에 이르러 임업시험장이 들어선 이래 한국개발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산업기술정보원, 국방연구원, 한국산업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 임업연구원과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영화진흥공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이 자리하여 명실공히 천장산이라는 땅이름에 걸맞게 하늘이 감춘 학문과 정보, 기술의 첨단 벤처밸리로서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으니…. 또 한가닥의 가지산을 따라가노라면 배봉산 자락으로 영무원과 휘경원 터가 있고 서울시립대학교가 그 위용을 뽑내니 천장산의 지기(地氣)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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