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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활동/등산

금학산-고대산 등정기

by 우둥불 2008. 12. 8.

금학산은 철원의 대표적인 명산으로서 학이 막 내려앉은 형태를 하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서기 901년 후삼국 태봉의 궁예가 송학으로부터 철원으로 도읍을 옮길 때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금학산에서 황금빛 학이 학지(鶴池)로 날아들자 길상한 징조라 여기고 금학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명산의 힘을 받아 300년을 통치할 것이라 하였지만, 궁예의 고집으로 현 북녁땅에 위치한 고암산으로 정하여 결국 18년 통치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산군은 둘레만 해도 약 450km에 이르고, 남북 약 25km, 동서 약 14km의 규모에 고대산에서 관인면 환희봉(지장봉)으로 이어지는 중심 주능선을 축으로 연천군에 해당하는 서쪽 산줄기를 내보개(內寶盖), 동쪽 지역인 철원군, 포천군 산자락을 외보개(外寶盖)라고 하여 구분하는데, 연천군이 산 전체의 약 70%를 관할하고 있다.

 

외보개의 최고봉은 이번에 첫번째 봉우리로 오른 철원군 동송읍에 위치한 금학산(金鶴山·947m)이며, 내보개의 최고봉은 두번째로 오른 보개산이라 불린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약 6km을 내려가면 오를 수 있는 내산리에 있는 지장봉 즉, 환희봉(歡喜峰 877.2m)이다.

 

금학산은 장중하고 기품있는 골격으로 남성미를 내뿜고 있다고 보면, 환희봉(지장봉)은 빼어나고 수려한 풍광으로 여성미를 뽐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곳은 모닥불 본인이 우리나라에서 가볼만한 산 몇군데 중 하나로 여기는 곳이기도 하다.  

 

옛 기록에는 이 산 군에는 28개의 봉우리와 36개소의 절경지가 있고, 골짜기마다 불당이 들어서서 등을 켜면 마치 밤하늘의 별빛만큼 사찰의 등불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구한말의 항일의병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불교문화재가 파손되어 지금은 단 한 곳의 절이 남아있지 않고, 또한 해방 전까지만 해도 보개산은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해서 탐승객과 스님들이 즐겨 찾던 명소였다하지만 지금은 쓸쓸한 비포장 고갯길과 군사지역으로 고즈막한 모습으로 옛 명성을 뒤로하고 있다.

 

 


 

금학산으로 가는 길목에 동송읍은 철원군내 위치해 있으면서 철원읍과도 불과 반경 1km도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 위치하여 자칫하면 행정구역상 철원읍과 같은 곳으로 여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읍내의 고도가 해발 200m 안팎이어서 금학산 정상까지 947m 중에 200m을 덜 오르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 동송 읍내 광경 >

 

 

산행길은 매바위 능선, 큰바위 능선, 용바위 등 모두 준험한 암릉으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주로 오르는 등정로는 동송읍 북쪽지역인 철원여중고 앞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 능선을 타고 매바위 능선을 경유해 정상에 이르는 길이 대표적이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데만 약 2시간30여분이 소요되므로 이번 산행에서는 능선 입구에서 능선을 타지 않고 계곡으로 더 들어가 약수터, 운동시설을 경유해 남릉을 타고 매바위 능선으로 오르는 곳을 이용하였다.

 

약수터에서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산행을 시작하였으나 차가운 겨울날씨를 다시한번 실감을 한다. 드센 바람이 부는 날씨는 아니었지만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는 한파 속에 산행은 여러모로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다.

 

오르막길을 40-50분 올라 매바위에 이르러 철원평야를 바라보니 북녁으로 이어지는 평야일대가 장관을 이룬다. 이곳을 내려다 보고 있으니 1100여년 전에 궁예가 이곳에 도읍을 정할 때 어떤 마음으로 도읍을 정했는가를 조금은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철원평야 일대 >

 

 

약 30-40여분을 더 올라서니 금학산 정상이다. 정상은 이 지역에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군부대 시설물이었다. 민간에게 통제되었던 전방에 많은 고산지대가 2000년에 남북관계가 개선된 이후로 개방된 탓이니 특이하게 볼 일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더욱 더 남북관계가 진전되어 이러한 군부대 시설물이 점차 사라져지길 마음 속으로 빌어볼 뿐이다.

 

금학산과 보개산 사이 고갯마루에 내려서니 북쪽으로 안양계곡과 남쪽으로 담터계곡이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져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햇볕이 잘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고 다시 서쪽에 위치한 보개산을 오르기 위해 능선을 오른다.

 

 

 < 안양계곡 >

 

 

보개산은 서두에 설명하였듯이 주봉인 환희봉(지장봉) 북쪽에 위치하여 고대산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중간 봉우리이다. 정상에 올라서니 남쪽으로 보개산 줄기가 거창하게 뻗어있는 모습이 눈에 선명하고 북쪽으로는 철원평야지대가 확실하게 눈에 들어온다.

 

 

< 가운데 파인부근이 자루맥이 고개, 그 오른쪽 뾰족한 봉우리가 환희봉(지장봉) > 

 

 

< 저멀리 아물거리는 평야지대는 북녁땅 >

 

 

보개산에서 고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산행로는 대부분 북동쪽으로 능선에 가려진 그늘에 의해 대부분이 얼어 있어 산행하기가 아주 까다로웠다. 약 1시간 남짓 능선을 따라 북진을 하니 마침내 고대산이다.     

 

 

 

 

 

이곳 저곳 자료를 찾아보면 고대산(高臺山)은 신탄리 지역 사람들에서는 '큰고래'라 불리고 있으며, 이것은 아마도 '방고래'라 불리는 땔나무를 사용하는 온돌방에 구들장 밑으로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고랑을 고래라 불리는 것으로 보아 고대산은 골이 깊고 높은 뜻으로 불리는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보기도 한다. 지형도에는 '높은 별자리와 같다' 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 하여 고태(高台)라고도 표기하기도 하였다. 

 

또한 고대산은 옛부터 임산자원이 풍부하여 목재와 숯을 만드는데 적합한 부락으로 형성된 주막집들이 있다하여 신탄막(薪炭幕)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웠으며, 한국전쟁 이전에는 참숯이 유명했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였다. 구한말에는 1907년 11월 4일 의병 150명이 일본군 보병 제20연대 8중대와 연천에서 격전한 후 신탄막에서 흩어지고 의병진 60명이 고대산에서 다시 일본 군대와 치열하게 교전한 곳으로서, 우리 선열들의 용맹스러운 민족정기가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대산에서 증명(?)사진을 찍고나니 오후 4시가 넘어서면서 해가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하니 어둡기 전에 부랴부랴 하산을 서두렀다. 다행히 하산길은 해가 지는 방향으로 나 있어 빙판길은 모면하여 길이 미끄럽지는 않았다.

 

 

 

 

신탄리역앞에 들어서니 오후 5시 30분. 기온이 몹시 낮아 춥고 미끄러운 산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산행에 나섰던 30명 모두가 아무 사고없이 안전산행을 한 것에 대해 안도를 하며 길고 험준했던 하루를 또 하나에 추억의 기억상자 속에 담아 올 수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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