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계획은 당일치기로 공룡능선을 종주할 계획이었는데 공룡은 작년에도 종주를 하였기에 이번에는 서북능선으로 종주하려고 산행 계획을 변경하였다.
서북능선은 지난 30대 초반, 여름에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종주를 한 기억이 있어 50대에 들어선 지금으로선 그때보다 더 힘든 산행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되었지만 그때는 대청봉까지 완전종주였고 이번에는 한계령으로 내려선다는 계획아래 조금 가벼운 마음을 갖고 실행에 옮겨보았다.
집에서 새벽 5시 40분경에 출발한 자동차가 한계3거리를 지나 장수대에 들어서니 7시 30분 정도가 되었다. 예전 80년대 초에 한계리에서 군생활을 할 때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원통까지 족히 5시간은 걸리던 때를 생각하니 설악산까지의 교통에 대해 다시한번 새삼스러움을 갖게된다.
오전 7시 50분경에 장수대에서 자동차를 주차해놓고 짐을 꾸려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날씨는 전날 비가 온 뒤에 구름이 잔득 낀 날씨라서 산행 초에 서늘하고 암울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산을 조금 오르다보니 오히려 이런 날씨가 산행에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공원관리공단에서 대승폭포로 오르는 가파른 절벽길에 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아 시간을 단축하며 쉽게 오르는 것은 좋았지만 나름대로 자연스런 등산의 묘미는 느낄 수가 없어 조금은 아쉬움이 생겼다.
전날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승폭포는 수량이 생각보다 많지않아 예전 오색 등산로 옆 독주골로 올라 보았던 수십미터높이에 풍부한 수량으로 위압감을 주었던 독주폭포가 갑자기 기억에 되살아 났다.
<대승폭포>
대승폭포 주변을 한번 흝어보고 대승령을 향해 외로운 발걸음을 걷어내며 힘차게 대승령에 올라서니 약 1시간 30여분이 소요된 듯 했다. 잠시 대승령 터에 앉아 쉬고 있는데 서북능선 쪽에서 갑자기 네명의 남녀가 올라와 서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니 세명은 한계령에서 새벽2시 30분경부터 시작하여 야간산행으로 서북능선을 타고 십이선녀탕계곡으로 내려갈 예정이고 또 한명은 밤새 귀때기청봉 부근에서 비박을 하고 장수대쪽으로 내려갈 예정이라 했다.
오전 9시 30분경 대승령을 내려서며 근 16~17년만에 서북능선을 밟기 시작했는데 능선주변은 온통 구름으로 둘러쌓여 가시거리가 약 10여미터 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등산로 역시 온통 물에 젖어 흙길은 진흙탕길이였고 바윗길은 미끄러워 산행을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도 위험한 바윗길은 여지없이 나무계단으로 시설해 놓아서 인위적인 시설을 껄끄러워하는 산악인에겐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승령에서 귀때기청봉을 가는 능선길에 큰 감투봉 부근 첫번째 1400미터급 봉우리를 올라서는데 날씨가 좋았다면 저 멀리 백담계곡에서 작은 감투봉으로 옆으로 이어지는 흑선동 계곡의 비경과 구곡담과 어울려 뻗어내린 용아장성릉이 한 눈에 들여오련만 구름에 둘러싸인 서북능선은 좀처럼 구름에 걷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하다.
<서북능선 중에>
한편으론 미끄런 암봉을 지나치며 간간히 눈에 들어오는 붉은색에 큰앵초가 이슬에 젖어 붉은색이 더 유혹을 느끼게 한다.
<큰앵초>
잠시 바위능선에서 길을 잘못들어 깍아지른 벼랑끝에 다달았는데 하얀털옷을 입은 듯한 솜다리 세녀석이 눈에 아롱거렸지만 워낙 가파른 바위틈에 자라고 있어 카메라에 담기가 어려워 그냥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잘못 들어선 바위능선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산행 중에 솜다리는 물론 웬만한 산에선 보기 힘든 연영초나 기생꽃 같은 희귀 야생화도 피어있어 역시 설악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능선을 오르니 한무리의 단체산행 중인 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서북능선은 아직도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그런지 산행 중에 간간이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 너무 보기 좋았다.
<기생꽃>
<연영초>
등산로가 점점 너덜바위가 많아지는 것을 보니 귀때기청봉에 가까와지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1578미터 정도 되는 귀때기청봉은 구전으로 들려오는 얘기로는 대청봉을 넘보려다가 귀때기를 얻어맞고 설악의 다른 준봉과는 다르게 한쪽으로 밀려나 귀때기청봉이되었다는 우스운 구전 얘기가 있다.
아무튼 그러한 얘기와는 다르게 실제로 귀때기청봉을 가노라면 워낙 많이 널려있는 사람 몸체만한 너덜바윗길에 웬만한 중견 산악인도 불평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러나 십수년만에 가 본 귀때기봉의 그러한 너덜바위지대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 간에 세월 속에 바위 틈새에 흙과 먼지 등이 쌓이면서 그 사이로 잡목과 풀들이 자랐났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 사실이었다.
<귀때기청봉 주변의 너덜바위지대>
숨을 가프게 쉬며 힘들게 귀때기청봉에 오르니 사람들에 의해 너무도 피폐해진 준봉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길 없었는데 예전엔 황량하다 못해 원시적이었던 귀때기청봉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음식물 쓰레기와 냄새의 진동으로 주변이 몸살을 앓고 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귀때기청봉을 지나 너덜바위지대에서 잠시 쉬며 간단한 요기를 하니 점점 구름이 걷히며 날씨가 밝아지고 있어 카메라를 꺼내 사방의 아름다운 경치를 담아본다. 이러한 너덜바위지대가 귀때기청봉의 특징이자 전망을 좋게하는 요소이기에 어찌보면 이러한 자연스런 풍경이 이 산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귀때기청봉 주변 원시림>
<소청봉과 대청봉>
귀때기봉에서 약 40여분 내려서니 한계령갈림길이 나타나고 이곳부터 많은 등산객을 볼 수 있었는데 역시 등산객이 많은 곳에선 사람이 반갑기보단 귀찮게(?) 여겨지기 때문인지 마주치는 사람조차 눈을 마주치는 것을 꺼려하는 듯 했다.
한계령 내리막길을 약 30여분 내려서니 등산로 입구가 나타나고 곧 한계령휴게소였는데 연휴로 인해 산과 바다로 놀러온 사람들로 인해 휴게소부근이 북적거리는 것이 이제서야 지겹게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 세속으로 돌아왔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속초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한계령에서 타고 장수대에서 내리니 예상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 지난번 수해로 휩쓸린 장수대 야영장쪽으로 차를 가지고 들어서 휩쓸린 숲 건너편으로 건너가 간간히 흐르는 설악산 계곡 물에 발을 담그니 그 시원함과 여유로움이 설악산 신선이 따로 없음을 알수 있었다.
예전 군생활을 했던 한계리 공병대대 부근으로 달려가 맛있는 순대국으로 저녁한끼를 떼우고 저녁 7시가 훨씬 넘어서 여유롭게 귀경길에 들어서며 오랫만에 오른 설악산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끝.
산행구간 : 장수대 - 대승폭포 - 대승령 - 1408봉 - 귀때기청봉 - 한계령갈림길 - 한계령휴게소
산행시간 : 2008년 6월 7일(토) 8:00 ~ 15:00 (약 7시간)
산행날씨 : 흐리고 약간 추위를 느끼다가 오후에 서서히 개며 따뜻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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