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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활동/이것저곳

오래된 미래

by 우둥불 2007. 9. 20.

스웨덴의 언어 학자 '이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작은 티벳' 라다크에서 생활한 16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화 되어가고 있는 라다크를 통해 인류의 올바른 발전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 권장해 보며 이 책에 대한 몇가지 발체글을 올립니다.

 


<음식관련>

 

라다크 사람들은 전통적인 생활방식에서 스트레스를 별로 경험하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 삶의 속도는 느슨하고 편안했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규칙적으로 장시간 운동을 하고 정제되지 않은 완전식품을 먹는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그 지역에서 기른 것이고 유기농업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까지 사실상 환경오염이란 없었다.


서구의 기준으로 따르면 라다크의 전형적인 식사는 전혀 균형잡힌 것이 아니다. 푸른 채소와 과일은 아주 조금 밖에 없고, 버터와 소금의 소비는 서구의 기준으로는 위험할 만큼 높다. 그러나 그런 불균형 식사의 결과로 인해 서구에서 흔히 보는 건강문제들은 거의 없다. 예를들어, 극단적으로 높은 콜레스트롤 섭취에도 불구하고 심장병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아마 두가지일 것이다.


첫째로 서구국가도 점점 깨닫고 있는 것처럼 절대적으로 옳거나 틀린 영양섭취라는 것은 없으며, 오히려 영양섭취보다 운동부족이나 스트레스 같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사람들에게 어떤 영양섭취가 필요한가는 사람은 오래전 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따라 진화해 왔기때문에 음식에 대한 요구는 그 땅이 제공할 수 있는 것과 일치하게 되는 것 좋다는 점이다. 에스키모인들이 거의 아무런 곡물 섭취 없이 생선과 고기만으로 건강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라다크 사람들은 보리와 낙농제품 만을 먹고 잘 살수 있는 것이다.

 


<경제관련>

 

작가는 관광사업이 시작될 때에 라다크에 있었다. 그래서 변화의 과정을 처음부터 관찰할 수 있었다. 작가는 라다크 말을 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라다크의 현대화가 초래하는 심리적 압력에 대해 궤뚫어 볼 수 있었다.


서구 세계를 라다크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즉, 서구문화 밖에서 서구문화를 보면 무한히 성공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관광사업이 시작되자 아무런 경고도 없이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라다크에 들이 닥쳤다. 하루에 관광객 한 사람이 쓰는 돈은 라다크의 한 가족이 일년동안에 쓸 수 있는 금액이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 돈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 즉 서구에선 살아남기 위해서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다시말해서 음식과 옷, 잠자리등에 많은 돈이 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라다크 사람들은 이러한 이방인들과 비교하면서 갑자기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라다크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2달러를 버는 라다크 사람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기색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속으로 '아이구! 가엾어라.. 당신들에게 큰 팁을 주어야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시간개념>

 

전통적인 방법으로 밭을 갈면 시간이 많이 걸려 1에이커를 가는데 반나절이 걸릴 것이다. 라다크 밖으로 가본 적이 없는 농부라면 이렇듯 시간을 절약하는 기술을 환영할 것이다. 트랙터로 하면 반시간이면 될 것을 반나절씩 보낼 일이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는 새로운 기술이 결국은 시간을 절약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전통적인 경제에서 시간은 넉넉했고 오직 계절의 변화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았다. 할 일이 많더라도 무엇이든 인간적인 속도로 진행되었고 누구든지 여유가 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현대 경제는 시간을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꾸어 놓았고 갑자기 시간은 물량화되고 더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져 분, 초를 다투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간은 값비싼 물건이 되었고 이러한 '시간의 절약'은 인간의 삶의 속도와 함께 더 바쁜 생활을 만들게 하였다.

 


< 교육과 문화>

 

현대교육은 지역의 자원을 무시할 뿐 아니라 더욱 불행한 것은 라다크 아이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문화를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학교는 모든 것을 서구 모델로 권하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 아이들은 자부심을 잃었고 자신들의 전통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들었다.


이러한 라다크에서 관찰된 악순환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아마도 개인의 불안정이 가족과 공동체의 결속을 악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이로 인해 개인의 자존심이 더욱 흔들린다는 것이다.


소비주의가 이 모든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그 이유는 정서적인 불안정이 물질적인 신분상승에 대한 갈망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고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는 욕구가 자기를 상당한 인물로 만들어 줄 소유물을 얻고자 하는 욕구와 충동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물건 자체의 매력보다 훨씬 더 큰 동기이며, 실제 필요치 않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찬양받고 존경받고 사랑받기 위해 믈건을 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번쩍이는 새 차를 가진 사람은 주위에서 특별 취급을 받아 더 고립되고 그러므로 그 상대적 욕구는 더 커져 이 불행의 쳇바퀴는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점점 더 자신들에게서 서로서로 분리되는 순환과정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서구문화의 약속>

 

서구적인 개발은 세계를 발전시켜 저개발국가들도 부유하고 안락해 질 수 있다고 약속한다. 가난은 제거되고 인구과밀과 환경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얼듯 보기엔 이치에 맞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실제로 내재적인 결함과 심지어는 속임수가 들어있다. 사실 서구국가들이 기본적인 산업용 자원을 소비하는 방식과 속도는 저개발 국가들이 서구국가를 따라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세계 인구의 1/3이 세계 자원의 2/3을 소비하면서 나머지 2/3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라고 말하는 것은 사기와 별다를 바가 없다.


개발은 흔히 착취, 즉 새로운 식민주의에 그럴듯한 이름일 뿐이다. 개발과 현대화를 추진하는 세력은 대다수 민중을 종래의 자급경제로부터 끌어내어 환상을 좆게 만들고 결국 물질적으로 궁핍해지고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하여 방향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다수가 빈민가의 주인이 되어 버렸다. 땅과 지역경제를 떠난 결과,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도시의 꿈의 그늘 속에 주저앉게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생산과 소비의 증대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자연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에 의해서 보전된다고 하면, GNP와 같이 단순한 수량적 척도로서 사회발전을 가늠하는 산업문화 속에서 인간은 끝없이 경멸당할 뿐이고 살아남기 위해서 이웃과 자연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산업문화는 일찍이 간디가 간파했듯이 오늘 날 인류에게 주어진 최대의 저주이며 질곡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