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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활동/등산

설악산 마등령 - 겨울 아닌 겨울산행

by 우둥불 2005. 4. 2.

발자취 : 설악산 마등령

시  간 : 2005년 4월 2일 9시 30분 - 17시 
날  씨 : 맑고 바람조금
인  원 : 3명

 

 

마등령 오르막길에서 바라본 천화대와 대청봉

 

 

2005년 4월 2일이면 봄날이 시작되는 시기이건만 저 멀리 보이는 설악의 봉우리들은 찾아오는 봄날을 시기해서인지 아직도 하얀 세상에 파묻혀 속내를 내비칠 마음이 전혀 없는 듯하다.

 

예년 같으면 3월이 들어서기 무섭게 공원관리소에서 산불방지기간을 정하여 등산 허가가 나지 않을 시기이건만 올해는 유별나게 내린 눈 덕분에 4월 초에 입산 기간 끝머리를 겨우 붙잡고 입산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산행 여부에 대해 설악 공원관리소에 실시간으로 문의를 하여 왔는데 가야 할 행선지인 공룡능선은 며칠 전에도 눈이 내려 3월 28일 현재 아직도 길이 뚫리지 않았다 한다.  


아무튼 사내 행사 후 모처럼 갖는 설악에서의 주말을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까운 일이라는 생각에 당일 산행이지만 겨울산행 준비를 하고 온 나는 눈덮인 설악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짓는다.


4월 2일 오전 9시경 모든 일정을 끝마치고 일단 능선을 오르기 위해 오전 10시경부터 비선대에서 마등령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계획대로라면 저녁 8시경이면 다시 비선대로 내려오리라...


금강굴 입구를 지나 점점 심해지는 비탈지를 빠른 걸음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장군봉과 나란히 하는 능선상에 오르니 뒷쪽으론 권금성에서 이어지는 화채능선이 유유히 서 있고 오른쪽으로는 저 멀리 동해바다와 더불어 울산바위가 길게 자리 잡고 있다.


잠시 암봉을 넘어 심해지는 오르막길은 조금씩 오를수록 눈이 밟히기 시작한다.  


약 800고지쯤 올랐을까 이제부턴 아예 눈이 무릎까지 빠지기 시작하는데 조금씩 녹기 시작한 눈이 습설을 형성하고 있어 산행을 하기에 평상시보다 2배 정도 힘이 드는 것 같다.  러셀은 거의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래도 앞서 한 두 사람 지나간 흔적은 보인다.


그러나  60도 이상 경사로에서 일부구간은 하체 전체가 눈에 빠지는 경우도 있어 진행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어려움을 느낀다. 그나마 단단히 굳어진 눈 위를 골라 디디며 최대한 눈 속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전진을  해본다.


워낙 가파르게 오르는 고갯길이라 힘겹게 오르는 가운데 주변 경관과 더불어 불교 명칭으로 불리는 천애의 자연 문 2개를 지나게 되는데, 그 하나가 모든 번뇌를 깨뜨리고 극락으로 들어간다는 금강문이며 또 하나는 번뇌의 속박을 풀어 삼계의 업고에서 벗어남을 뜻하는 해탈문이다. 


첫째 문인 해탈문을 지나니 말 그대로 세상에 모든 번뇌의 속박을 풀고 하늘로 승천하듯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이때 전방에 나타나는 설악의 최고 절경인 천화대가 눈 속에 파묻혀 그 위용을 나타내는데 마치 내 마음이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공룡능선으로 이어지는 천화대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암봉군으로 이 장소가 아니면 제대로 전망할 곳이 몇 군데 없는 줄 안다.

 

다시 눈 덮인 경사로를 어렵사리 올라 얼마를 더 지나니 해탈문보다 더 그럴듯하고 웅장한 금강문이 나타나는데, 이 곳을 지나면 이제 세상의 모든 번뇌를 깨뜨리고 극락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과연 지금 들어선 여기 극락의 세계는 나 외에 삼천만라 군상들이 즐비하게 서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등령 길은 금강문 아래쪽으로 평소 때 말라있는 샘과 금강문 위쪽에 항상 마르지 않는 샘이 2군데 있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아래쪽에 있는 샘은 높은 기온에 눈이 녹아내려 물이 넘쳐흐른 반면, 위쪽에 샘은 아직 두텁게 얼어붙은 눈과 얼음 밑에서  물소리만 요란할 뿐 가까이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아래쪽에서 물을 수통에 가득 채웠으니 마음은 홀가분하다.


금강문을 통과하여 평소 때는 약 2시간 정도면 오르는 마등령을 거의 두배의 시간에 걸쳐 올랐다.


마등령은 사시사철 바람이 드센 지역이다. 백두대간의 일부분으로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타고 공룡능선으로 이어 황철봉과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가파른 고갯마루이며, 설악산중에서 절대 개발이 될 수 없을 정도로 험준한 제대로 서쪽에 곰골과 길골을 끼고서 거센 바람이 항상 불어대기 때문이다.   


이때 맞은편에서 한 사람이 오면서 반갑다고 소리를 지른다. 이 사람은 앞서 오른 2명 중 한 사람으로서 공룡을 타러 새벽 5시부터 오르기 시작했는데 자신은 다리를 다쳐서 포기하고 오세암 쪽으로 내려가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포기하고 다시 돌아오는 길인데 우리가 오늘 산중에서 만난 첫 사람들이란다. 일행 중 한 사람은 그대로 공룡으로 진행했는데 이미 3시간 전에 지나갔다 한다.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사항으로 봐서는 러셀을 해가며 공룡을 타고 무너미 고개를 지나 천불동을 거쳐 비선대로 돌아가려면 최소한 22시 이후에 떨어질 것 같다.


마등령에서 내리막 오솔길을 따라 마등령 쉼터까지 내려가 본다. 빼어난 외설악의 경치와 설악의 고도감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오래전에 올랐을 때 라면을 끓여먹다 워낙 낮은 기온에 물이 끓지 않아 그냥 부풀린 라면을 먹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미 겨울은 지났건만 겨울 같은 분위기 속에 나 홀로 서있는 마등령 쉼터는 황량함 속에 쓸쓸함마저 더해진다.  


속초에서 서울 가는 야간 고속버스가 23시 10분까지 있다. 계획대로 간다 해도 버스를 놓치고 하룻밤을 머물러야 하기에 갈등이 생긴다.

 

일단 바람이 잠자는 장소에 가서 컵라면을 꺼내 온수를 부었다. 그리고 팩소주 한잔을 걸친다. 이미 느슨해진 마음은 바쁠 줄 모른다. 차디찬 김밥 한 줄에 뜨거운 라면 국물과 소주 한잔...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무념의 세계 속에 들어와 있는 내 모습이다.


이제 먼저 내려간 사람을 좇아 내려갈 궁리를 한다. 내 산행에서 있을 수 없는 '빽'산행이다.

눈이 깊게 덮인 내리막길은 오를 때와는 사뭇 다르게 더욱 스릴이 있다. 할 수 없이 스틱을 꺼내 든다. 그러나 내리막 길에 한 손에 들고 있는 스틱은 더 불편하다.  2시간 정도 눈과 싸우며 내려오니 장군봉 근처인데 몇몇 사람들이 올라와 있다. 차림을 보니 산행을 목적으로 한 차림이 아니다. 그냥 호기심에 올라왔단다.

 

이제 스틱도 접고 스패츠도 빼서 배낭에 넣고 돌계단길을 내려오다 보니 적벽을 하강하는 사람들이 저 멀리 보인다.  이제부턴 봄의 기운이 완연한 곳에 와 있었다. 두 시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이렇게 계절이 다른 세상을 접하니 새삼 신기하기도 하였다.

 

씁쓸한 마음에 비선대를 내려와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는 천불동 계곡 쪽을 바라다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야영장비를 짊 어머니고 마주치고 지나가는 모습에 묘한 감정이 얽혀진다.


이제 5월을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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